인생은 딱 한 숟가락의 무게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하고 내 조국의 풍요로운 산과 강 그리고
흙을 사랑하고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기에 한평생 평범한
중국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렸다. 내가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다
름 아닌 평화였다."
이것은 중국화의 거목인 치바이스가 자서전인《쇠똥 화로에서
행내 난다》에 쓴 글이다. 그가 94세 때 그린 그림<연꽃과 개구리>
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그 그림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개구리가 고요한 연못에 풍덩 빠져들 듯이 말이다. 참으로 오랜만
에 그림을 보면서 편안한 기분이 느꼈는데, 아마도 연꽃과 개구리
가 주는 자연의 익숙함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가까이에도
개구리와 연꽃은 항상 거기에 있다.
치바이스는 1864년에 태어나 1957년까지 살았으니까, 그의 생
애는 곧 중국의 근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청나라 말기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중국 혁명기의 격동 속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이로
태어난 치바이스 생계를 위해 목수 일을 하면서도 그는 항상 글공
부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목수인 그에게 연장 대신에 붓을 쥐어준 사람을 그의 스승인 휘
친위안이었다. 치바이스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알아본 스승은 '네
가 그림을 그려 판다면 자연스레 글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청년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스승의 칭찬에 힘을 얻은 치바이스
는 이후 수만 점의 그림을 그렸고, 결국 중국 근현대 미술계의 최
고봉으로 우뚝 서게 된다.
스승 휘친위안이 타계하다 치바이스는 스승의 영전 앞에서, 자
신의 작품 중에서 스승이 생전에 크게 칭찬해주었던 작품 20여 점
을 골라 그 그림을 분향하듯이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분신
을 태워 스승의 죽음을 애도한, 참으로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치바이스의 자서전에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사
랑하는 가족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회고
도 나와 있다. 비록 그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에 불을 지피면서 향
내가 나는 추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날마다 글을 쓰려는 치바이스에게 할머니는 "어디, 솥에 글을
끓여 먹는다더냐?"라고 생계 걱정을 하지만, 손자가 막상 그림으
로 돈을 벌자 "이제 보니 그림을 솥에 넣고 끓이는구나"라고 말한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 가난한 시골 목수가 화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을 담은 자서전이었지만, 위대한 예술가이기보다 평범한 중국 시
골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
가 평화롭지 않다면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같은 동네로 이사 온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왜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그 양반은 숟가락을 놨다'라고 말들을
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 말은 얼마 전에 자신
의 사무실 짐을 옮겨준, 이삿짐센터 직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서 연유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굵은 팔뚝을 가진 젊은 이삿짐센터 직원들
은 그 모습만으로도 그동안 그들이 들어 올린 이삿짐들의 무게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의 거실은 작은 도서관이
었다. 짐을 옮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책을 담은 상자는 무척 무겁
다. 가벼운 책들이 모이면 큰 나무 한 그루와 같은 무게로 변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삿짐을 한창 나르고 있는 그 젊은 직원에게 "이삿짐
중에서 책이 가장 무겁지 않나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 질문에
젊은 직원은 콜라 잔을 들어 목을 축이곤 이렇게 대답했다.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흔히들 '숟가락을 놨다'라는 표현을 쓰잖
아요. 그런데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의미를 단번에 알
겠더라구요."
처음에 친구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 즉 죽는다는 것인
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하지만 짐꾼은 다른 의미로 그 말의 뜻을 이야기해주었다. 숟가
락이 생각보다 굉장히 무거운 짐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주방 기
기 창고의 짐을 옮길 때, 창고에 쌓여 있는 숟가락을 담은 통들을
들어 올리면서 그 숟가락의 무게에 새삼 놀랐다는 얘기였다.
책 박스에 책을 담듯이 수많은 숟가락이 들어 있는 통들, 다시
그 통들을 여러 개 모아서 짐을 들어 올리면 장정 서너 명도 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숟가락의 재질에 따라서 차이가 나긴 하겠지
만, 일반적으로 쓰는 스테인리스 숟가락의 경우 딱 그렇다는 것이
다. 재질이 무엇이건 간에 아마도 그 젊은 직원은 숟가락들을 들어
올리면서 인생의 무거움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책이 숟가락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짐이라는 직원의 말을 들으
면서, 친구는 문득 양장본으로 되어 있거나 페이지가 꽤 두꺼운 책
을 만나면 '무거워죽겠네'라고 투덜대었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
울 수가 없었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 그 힘은 결코 만
만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 한 수저의 밥을 먹기 위해 우리는 힘겨
운 노동을 하고, 온갖 치욕을 참고, 또 자신이 진정 바랐던 꿈마저
포기하기도 한다. 친구는 숟가락을 드는 행위를 마치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까지 머리
를 스쳤다고 한다.
그날 친구가 무심히 웃으면서 해준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한동
안 돌멩이처럼 날아다녔다. 아마도 나는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숟
가락이 주는 내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중국 고전 중에 《권인백잠勸忍百箴》이라는 책이 있다. 참을 인
忍 자를 써서, 참는다는 것에 대한 백 가지의 잠언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 나오는 백 번째 이야기는 이렇다.
'사람의 청춘 시절은 봄과 같다.
꽃이 만발하고 새가 지저귀는 시간은 석 달을 넘지 않는다.
그러면 무더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이 계속되면서 순환한다.
인생이 얼마나 된다고 자신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출처 : 착한 책(원재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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