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서울한양도성 광희문 동대문 ♧

doggya 2020. 2. 17. 14:40

광희문 동대문도착~~~

♧서울한양도성 광희문 동대문 ♧


남산 성곽길 남산구간을내려와서
국립극장도 지나오고 광희문을 향하여

고고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정말 꼭꼭에워쌓다는걸 깨달았어요
동문회때 다녀왔던남산  제이그랜하우스

구경하고 늘저녁때 방문 주변몰랐는데
초대 대통령 이승만대통령동상도 있더군요

그리고 그주변 호텔인지 신라 면세점인지
호텔도 있고요
광희문 봉승성화대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장충체육관 돔

지붕도 보고요 이간문 오간문

춟발하기전에는 대강 정보를 검색하고 나서는데 그것은 빙산의 일각
직접 보고 방문 현장 에서 지리도 배우고


역사도 배웁니다

리딩해주신 대장님
함께 동행 해주신님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분들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동대문 찍고서 시장구경도 하고
맛난 국수도 사주셔서 대접받고서

동묘역에서 각각 집으로 안전하게귀가했습니다

한양도성순성길 종주 를 ~~~
한양도성 순성길  종료합니다 

2020년 2.13 다녀오고나서

2020년 2.14.금요일



어느듯  내려오니  광희문  교회가 보입니다  

그럼  저기아래에 보이는곳이 광희문인가봅니다


바로눈앞에  광희문  교회가 보이는것을 보니  광희문이  가까운가 봅니다 



















도심지  가운데 이런성곽이  있는것  참   신기합니다 



담쟁이  덩쿨로      쌓여있기도합니다 




남산에[  팔각정이  있는가하니 여기도  ~~~~~


#광희문

  

광희문은 태조 5년(1396)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기록을 보면 남소문과 광희문의 자리를 혼동하기도 하고, 성문 터과 군영의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도성을 수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은 도성 수축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숙종 37년(1711)에 중건에 착수하는데, 수구문을 다시 쌓고 아울러 문루도 조성하게 하였다. 수구문은 심하게 파괴되어 석축을 새로 개수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서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아문에 목재를 넘겨 주어 돈의문 문루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성문이 수축되고 그 이후 언제 문류가 중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숙종 45년(1719)에 수구문은 옛 이름이 광희문이니, 해당 군문에서 액호를 써서 걸 것을 요청하자 대리청정하던 세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영조 때에 도성의 문루가 없는 성문을 중건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에 광희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1759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성도>에는 당시 문류유무에 따라 성문을 그렸는데 수구문에는 문루가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광희문은 숙종 때에 재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문루가 파고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후 1975년에 도로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는 이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975년 11월에 준공되었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옥수동 두모포나루로 한강을 건너 광희문을 통하여 인현동에 있던 지정숙소인 동평관으로 향하였다. 성문은 서울성곽의 다른 소문과 같이 장방형 무사석으로 높게 축조한 육축을 마련하고 육축 가운데 홍예를 앞뒤로 설치하여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조성하였다.

#광희문 현판글씨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관심가지 지않는다면

어디 있는지 도 모르는  광희문 찿아서   왔습니다

강개무량합니다   



#광희문 

헉 글자가 안보여요  ㅠㅠㅠ


광희문 뒷면입니다





광희문 옆의  성곽입니다 그옆에는  다른 건물이  있어요



광희문   천장입니다 


#남산   팔각정  입니다 


#성곽마루 



그동안   한양도성  순성길을   투어하는동안   기쁨의  환호입니다 


모두들     기뻐서   환호합니다   



우와  ~~~~~~~~~~~광희문이다  저혼자서  신나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이처럼요     폭풍 감사    폭풍감동 



정말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각구간마다   트래킹하는동안   파노라마처럼  

저도  신나서    와   ~~드디어   광희문 도착이다   흥분의  도가니입니다 


  



광희문 을 확인하고서  시장골목으로 가보았습니다 


그련데  엄첨허름한 골목이었어요 눈으로 보아도  빈민촌같았어요  

남소문과 광희문은  자세히   읽어보셔요 그려면 이해가   빠르실거에요   

정말 빈민촌같았어요  

시장안들어가려디가   마지막종점인  동대문을  향하여  이동합니다 


동대문 역사문 화공원 돔으로 외부에서  본모습입니다



이제  마지막기점인 동대문을  향해서  이동합니다






텔레비젼에서  만 보았던 성화대입니다  

동대문 운동장기념관  성화   대가  나타났습니다  

1968년 설치되었다고합니다  


#성화대 

성화가   초초로  이용된때는 1955년개최된 제36회개최로  초종주자는 고손기정선수

이었으며 1969년 제50회   체육대회부터처음으로 실시 1968년 동대문 운동장 보수공사 야간조명시설과

성화대등이설치도었으며 철근에 콘크리트를 입혀서제작 하였고 상충부지름은  .2.15m

하층부지름은 115m이고   살은16개로구성되었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내위치한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을방문하여 내용을 알수있다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  겉모습만  ~~~~~




땅속에  있다가  나타났다고합니다 이간문   한양도성 정비 복원하면서요 

한양 도성  남산에 있던  역사와 가치   설명서를  보았을때    나타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운 동장을 만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땅속에서  나타났다고합니다


땅속에서  되찿은 한양도성은  2000년대  청계천복원공사인왕산과

 백악산을 (북악산)

역사문화공원건설

동대문운동장지부에메몰되었던 이간수문 메몰된성벽 멸실구간에서도

성벽을  찿을수 있었다고합니다

한양도성 역사와  의미   안내자료표에     명시되어있었어요 


#

#이간 수문 

을지로6가 18번지 청계천의 오간수문 바로 남쪽에 도성의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다.

 이 물길은 도성 밖에서 청계천 본류와 합류한다.

 2개의 홍예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오간수문의 형태를 축소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 지명사전에서 발췌 )다음백과 

다음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한번 다녀 와야겟네요 

 이해하기쉽게요 











오간수교  





#

오간수교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 즉 동대문에서 을지로5가로 가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한성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된 5개의 구멍을 만들어 홍예교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홍예 위에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다섯 칸의 수문을 설치했다고 하여 오간수다리,오간수문 등으로 불렀으나 성종 12년(1481)까지만 해도 수문이 3개였고 후에 몇 차례 증축을 거쳐 5개의 수문으로 확장되었다. 이 수문은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나가거나 혹은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었다. 실제로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典獄署를 부수고 도망갈 때에도 이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게 한다는 명목으로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리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하였다가 후에 그 위의 성곽이 훼손되면서 함께 없어졌다

(서울지명사전에서 발췌 )


드디어  동대문 도착 했습니다   하도 사진을 많이찍어서  밧데리    6개모두방전  ㅋㅋㅋㅋ

#동대문

흥인지문은 도성의 다른 문과는 달리 옹성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옹성은 흥인지문 외부를 반달모양으로 감싸고 있으며,

북쪽 한쪽만 개방하여 출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3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대문의 옹성은 태조 6년 (1397) 1월에 착공하여 4월에 완공하였다. 태조가 동대문에

한하여 옹성을 쌓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대문 부근의 지형이 낮을 뿐만 아니라

동대문 북쪽의 낙산도 낮고 평탄하여 적을 방어하기에는 부적당한 곳이므로 옹성을 쌓아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더이상  사진을 담을수 없었습니다 


*동대문역 앞입니다 종주  완료했습니다  



시청역9번출구  출발해서  쓰레기를  누가버리고 간거야   매너없게   두들겨패주고싶어요  



남소문  찿아서헤메기   전편에서   확인했을것입니다 







미만큼 다녀왔습니다  김유신동상   이시영 동상 갔어요  ㅋㅋㅋㅋ


한양도성   중요한 구간 구간 곳곳   그래도   다다녀왔었나  봅니다   전요





집에서  꼼짝안할때에는 대문밖에도  안나가고   잉녀놀이    ㅋㅋㅋ하하하  

하지만  남산 목멱구간을 걸은  발자국 만보걷기는 

그래도   2만보이상 걸었나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  종료합니다 

2020년 2.13 다녀오고나서

바렌타이랴고  하니    초코렛드셔요  마음의 선물입니다  

리딩해주신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해주신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을  약속하겠습니다  

*일행   3명


2020년    2,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