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개요
작곡: 1898 - 99년, 쟈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 - 1924년, 이태리) 대본: Giuseppe Giacosa와 Luigi Illica(이태리어) 원본: Victorien Sardou의 희곡「토스카」(La Tosca, 프랑스어) 초연: 1900년 1월 14일, 콘스탄찌 극장, 로마
연주시간: 제1막 약45분, 제2막 약40분, 제3막 약30분
주요등장인물:
플로리아 토스카(가수, 소프라노) 마리오 카바로도시(화가, 테너) 스폴레타(비밀경찰, 테너) 스카르피아 남작(경찰서장, 바리톤 ) 안젤로티(정치범, 베이스) 샤르로네(경찰관, 베이스) 성당지기(바리톤) 간수(베이스)
오페라 '토스카'를 이해하기 위해 시대 배경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여러해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아래 놓여 있던 이탈리아는 179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이 진군하여 나라 안의 사태가 갑자기 변한다. 얼마 후 나폴레옹 군이 이집트에서 고립되고 나폴레옹이 전사했다는 허위보도까지 전달되어 오스트리아 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빼았겼던 옛 영토를 탈환한다. 그러나 실은 살아서 귀국한 나폴레옹이 1800년 5월에 알프스 산을 넘어 순식간에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회복하고 6월에는 밀라노에 입성한다. 이듬해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 강화조약을 맺는다. 이 오페라는 그 동안에 벌어진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극중 스카르피아는 오스트리아 제국 지배하의 경찰서장이고 정치범 안젤로티 및 그를 돕는 화가 카바라도시와 연인 토스카는 나폴레옹 군의 도움으로 조국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원작은 빅토리앙 사르두의 희곡...
<토스카>의 원작자인 빅토리앙 사르두는 당시 프랑스에서 '멜로 드라마의 왕'으로 통했을 만큼 최고로 대중적인 인기작가였는데, 그는 당대 최고의 비극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이 희곡을 썼으며 전 5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한 독설가이자 희곡작가였던 버나드 쇼는 이 사르두의 극을 '마치 공장에서 생산한 것 같은 뛰어난 드라마'라고 그다운 풍자를 곁들여 칭찬했다. 전성기의 사르두는 흔히 '사르두 황제'라고까지 칭송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연극 <토스카>는 1887년에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푸치니는 1890년에 이 연극을 밀라노에서 보고 감격한다. 하지만 <라 보엠>의 작곡으로 바빠서 <토스카>에 눈돌릴 겨를은 없었다. 그러던 중 <라 보엠>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특히 파리 오페라 코믹에서의 성공적인 <라 보엠> 데뷔는 푸치니의 명성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이 때의 파리 방문에서 푸치니는 <토스카>의 원작자인 사르두와 만났다. 두 사람은 저작권에 대한 15%의 로열티와 5막짜리 희곡을 3막의 오페라로 고치겠다는 것에 합의했다. 자코사와 일리카가 대본을 맡았으며, 1900년에 로마에서 레오폴드 무노네가 지휘를 하여 초연했다. 토스카 역엔 루마니아의 소프라노 하리클레아 달크레, 그리고 카바라도시 역은 테너 에메리오 데 마르키가 맡았다. 초연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으나, 관객들에게 갈채를 받았고, 아리아의 앙콜 요청 및 일곱 번의 커튼 콜이 있었다. <토스카>는 그 당시 이태리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사실주의 오페라이므로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좀 살펴 보겠다.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토스카>의 무대는 1800년 6월 당시의 로마인데, 나폴레옹이 마렝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때가 그 시점이다. <토스카>가 전개되는 1800년 6월 당시의 로마는 문자 그대로 비밀경찰국가 같은 공포와 위협에 가득찬 무서운 도시였다. 이탈리아는 1861년에 사르디니아 왕국으로 통일을 이룩하기까지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줄곧 강대국의 침탈을 받았는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후엔 이탈리아 전토가 나폴레옹 체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군대가 작전상 일시 후퇴한 1798년 12월에 오스트리아의 메크 장군이 이끄는 나폴리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게 되는데, 일련의 전투에서 메크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줄곧 패배당하기 전의 수주일 동안 나폴리의 페르디난트 왕과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는 로마의 나폴리 대사관인 파르네즈 궁에 살고 있었다. <토스카>의 2막이 진행되는 곳이 바로 이 파르네즈 궁이다.
1800년에 들어오며 다시 프랑스군이 역전 기세로 승리하기 시작했고 <토스카>에 언급되는 결정적인 프랑스군의 승리가 마렝고 전투에서 있었다. 그것이 1800년 6월 14일이고 사르두의 원작에 의할 것 같으면 <토스카>의 시간설정이 마렝고 전투 사흘 후로 되어 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건 진행은 1800년 6월 17일부터 이튿 날 새벽까지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렝고 전투는 당시 통신 기관의 미비로 말미암아 처음에 이탈리아의 승리로 와전되었다. 그리하여 1막에서 성당지기가 기뻐 날뛰는 것이다. 2막에 와서 콘서트가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이탈리아의 승리가 아닌 패배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다 죽게 된 카바라도시가 그래도 몇 마디 외칠 기운이 솟아난 것은 그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통일됐을 때 세 살이었던 푸치니는 이른 바 '신국가'의 제1세대에 속했다. 그러므로 <토스카>의 배경이 된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푸치니에겐 이탈리아인으로서의 교육의 일부였던 만큼 사르두의 희곡을 보기 전에 이미 그것은 그의 정신 속에 배어 있었다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