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해바라기 사랑
어느 어머니나 마찬가지겠지만 민석이의 어머니는 특히 자
식들만을 위해 사신 분이었습니다. 민석이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 고마움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셨고 그곳에서 결혼도 하
셨습니다. 학교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누구보다
도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외아들인 민석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습
니다. 민석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할 때 어머
니는 민석이 대학 진학을 고집하셨습니다.
"엄마, 나도 대학 가고 싶지만 우리 집 형편으로는 힘들잖
아요."
"집안 형편은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볼 테니까 무조건 대학에 가라."
민석이가 생각하기에 자기 논밭 한 평 없이 남의 땅에 농사
나 지어주는 무능한 아버지가 등록금을 마련해주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난 네가 우리처럼 사는 건 원치 않는다. 남자는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배워야 한다. 돈 많은 놈도 머릿속에 든 게 많은
놈을 못 이기는 법이란다."
"누가 그걸 몰라요."
"무조건 대학에 가라. 나머진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넌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민석이가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 기숙사로 짐을 옮길 때 어
머니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돈 걱정을 하지 말고."
민석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 어머니의 삶은 더욱 바빠지셨
습니다. 동네에서 푼돈이라도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새벽같이
쫓아 다니셨습니다. 남의 밭에서 일도 해주고, 잔칫집 일도 거
들면서 한 푼 두 푼 모으셨습니다. 읍내에 5일장이 서는 날이
면 산에서 캔 나물을 내다 파셨고, 겨울에는 인형에 눈 붙이는
일까지 하셨습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민석이는 그런 대로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도 다니고 비싼 옷
을 사 입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이 어머니가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 나물을 판 돈
보다 많다는 걸 알았지만 민석이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민석이가 가끔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언제나 허리춤에 감
추어두었던 돈을 꺼내주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주신 꼬깃
꼬깃 접힌 지페를 민석이는 쉽게 써버리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누나는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하고 나한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되지만 엄마한테는
잘해라. 엄마 속상하게 하면 넌 정말 나쁜 놈이다."
"세상에 그만큼 안 하는 엄마가 어딨어."
"어휴, 이 녀석아, 정신 좀 차려라."
그렇게 철없이 대학을 다니던 민석이가 군대에 가게 됐습니
다. 군대 가기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민석이만 보면 눈물을 흘
리셨습니다.
드디어 입대하는 날, 아침부터 어머니는 민석이를 따라나섰
습니다.
"엄마 오지 마세요. 그냥 혼자 갈게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군대 가는데 내가 가봐야지."
민석이는 여자친구와 학교 친구들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
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싫어요, 절대 오지 마세요."
어머니는 결국 민석이의 고집에 밀려 따라나서기를 포기하
셨습니다. 대신 동구밖까지 따라나와서 민석이의 모습이 보이
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셨습니다.
민석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장독대에 정화수
를 떠놓고 빌었습니다. 물론 민석이는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
었습니다.
민석이가 휴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늘 버스 정류장에 나
와 계셨습니다. 민석이네 동네까지 들어가는 시골 완행버스는
하루에 네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첫차를 타
든 막차를 타든 어머니는 늘 정류장에서 민석이를 맞이 하셨
습니다. 때로는 휴가나 외박을 나온 민석이가 집에 들르지 않
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먼저 만나 며칠 밤을 자고 올 때도 변
함없이 어머니는 버스 정류장에 서 계셨습니다.
민석이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어머니에게 물
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니까 내가 언제쯤 올지 예감으로
아는 모양이지.' 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민석이는 결혼을 했
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들 마
중을 나갔다가 길이 엇갈려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
니 문득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정류장에
어김없이 서 계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때마침 있었던 집안 모임 때 민석이는 누나에게 물었습니
다. 누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해주었습니다.
"너 아직도 몰랐니. 네가 휴가 나온다고 부대 앞에서 전화하
면 엄마는 무조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셨어. 내가 그렇게 말
려도 안 들으시더라. 하루 네 번 버스 오는 시간에 맞춰 20리
길을 걸어서 정류장에 나가셨지. 네가 집으로 먼저 안 오고 서
울로 간다고 해도 막무가내셨어. 마지막 휴가 때 기억나지? 휴
가 나온 지 일주일만에 집에 온 거. 그때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하루 네 번씩 버스 정류장에 나가셨어."
일주일을 기다리고도 자식에게 서운하단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사랑에 민석이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
이 흘러내렸습니다.
출처 : 한 달이 행복한 책 (유린 지음)
어머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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