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13일사진일 것입니다 마이 모바일 직찍
하얀 목련과 그리움 ~아버지를 그리며
목련이 아름답고 절정인 무렵 언제나 내게는 생각 나는 사람
벌써 10년이 훨신 넘었는 모양이다
그당시 내아이 둘째아이 초등교 5학년 큰아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떠나갈ㄹ무렵 언제나 내곁에 계셔주리라고 믿었던 그리운 이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목련과 함께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장수하리라 믿었던 내아버지는 어느새 생을 독촉하고 계셨다 다
66세의 아까운 나이로 지병으로 떠나셨다
우리님의 일선 근무 요즈음처럼 무선 인터넷과 휴대폰 넷티즌의 발달되아
있지만 그당시는 연락이 곧잘 잘되지 않았었다
그당시 승용차있는 사람도 극소수 ,우리는 자전거로 통근 그리고 오토바이
그련 시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편이 오던지 말던지
전보 띄워놓고 난 갈길을 재촉했었다 ,지금 같으면 비행기랴도 탔을까
아니면 총알 택시랴도 잡아 타고 훌달려 왔을까 그당시 우리님은 철원에 근무했다
난 무작정 철원서 서울 ~또 그리고 집에까지 차를 또 타고 또 바꿔타고
장거리 심야거리를 얼마나 정신없이 혼자 울고 왔는지 모른다
누구에게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 모양 한없이울고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그것은 아랑곳 없다 ,난 눈물이뒤 범벅되어 돌아오고 있을때
왜그리 은가루를 날이듯 목련은 창밖으로 떨어지고 어쩌면 아버지 목숨을
단축이라도 하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모든 자식들 이 아직까지 오지도 않았었고
가까이 사는 동생내외몇명만 와 있엇다 행여 나 하고 ~~아버지 아버지
그리운 이름 아무리 불려 보아도 대답이 없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잘못햇어요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외치며 대성통곡하고
아버지 육신은 아직 입관하지 않은채 하얀 천으로 덮여져 있었던 같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저왔어요 .무슨 말이라도 하셔요
이렇게 떠나면 어떻해요 ?이렇개 아버지를 육신을 끌어안고 뒹굴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집안 친지분들이 말리신다
아버지 놓아드려 ,,,만류를 뿌리치고 절구하는데 순간 심한 악취가 코를 진동 햇었다 왠지 모른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아버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고인이되셨구나
그제사 난 아버지가 순간 섬뜩하리만치 무서움을 느꼇다
왠지 모른다 ,비로서 난 아버지에게서 뒹굴고 끌어 안았던 나의 온몸 절규에서 벗어낫엇다 그렇게 내아버지를 떠나 떠냈다
내아버지는 상당히 자상하시면서 엄하셨고 부지런하고
우리 당신 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엿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건불도 내건불도 낫다고 늘 한결같이
딸 7공주을 유난히 사랑하신 내아버지
어쩌면 한이 맺혀 우리아버지는 가축 동물도 암놈은 절대 안기르시는 내아버지
생식을 하면 하다못해 개도 얼마나 잘크던지 (생ㅅㅓㄴ 머리 같은것 ,싱싱한 생선
몇개월사이 기르던 개도 어느새 송아지 처럼 잘 크버린 우리집 강아지들
우리의 민생고 도 해결해주엇던 강아지 .그리고 소
나보다 큰소를 몰고 가면 왜그리 무섭든지 그래도 온순한 가축들
당신딸들은 한번도 업어주지 않으셨던 내아버지
나의 첫아들 당신 첫손주랴고 포데기로 업어주신 내아버지
망망 대해 바닷가 에서 아버지를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버릇이 지금까지 잠못이루는 습관을 들게해서
행여 아버지 어머니 무슨 사고 라도 당할까봐늘 걱정하던
어린 딸은 성년이 된 두아들의 엄마가 되어 중년 여인이 되어있네요
부모는 그자식을 돌보지만 모두모두 챙기지만
그자식들은 일부분 아버지 기일에 못오시더라도
아무련 질책도 아무련 부탁도 할수 없다
각자의 삶의 형태이고 방식이니 못온다고 하는 아우들을
그자식들은 삶이 고단해 못온단다
ㄹ어떤이는 어른모신다고 늘 못오고 ,,장거리랴서 못오고
힘들다고 못오다고 ..아무련 부탁도 할수 없다
그냥 일년에 한번인데 오려므냐 ,,엄마도 뵙고 ..안오기 시작하면 맨날 못와
나의 부탁이 또 독백으로 중얼 중얼 ,,
딸ㅇ;
많아도 큰소리 한번 안치시고 키우신내아버지 윤탸ㅐㄱ하게 풍성하게
길려주신 내아버지 ,목련꽃이 피고 질즈음이면 유난히 아버지그리운 딸은
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아도 늘 맏이라 다르구나 ,,
아버지 기다려주는 딸이 너밖에 없구나 우리 큰딸언제나 내게 크다란 등짐 지어주고 부모 역활 해주는 네가 고마워 하면서 이른 새벽 엄마께 수산 시장 다라이이꼬
고갯길 넘어오던 그곳은 왜그리 무섭고 춥던지 이제는 모두 승용차로 불과 몇분거리이지만 사춘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온 유년시절 늘 등불 밝히고 생선 가득 싣고 둘려메고 오시던 둥우리라고 불렸던 기억 남
아버지 영정 대하면 언제나 눈물 가득 얼굴 가득 그렁그렁 한 모습뵈면
늘 목이 매입니다
사는게 무엇인지 올해는 엄마가 제수 용품 사려 나오시는데 는 찿아가 뵙지 못했습니다
한며칠전 그리운 아버지 기일을 다녀 오고 나서
.봄 향기 가득하고 봄내음이 절정이지만 제게는 4월이 잔인한 달일까요
아버지를 그리면 서 목련과 하얀 그리움
사진과 글 재구성 짜집기 한것입니다
사진은 2008년 사진과 2009년진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생존 부모님에게 전화도 자주 드리고 효도하셔요
조이님 ~~^^*다녀갑니다
어쩌면 익숙한 글 일수도 ,익슥한 사진일수도 있겠죠
익숙한 음악 일수도 ,,이제는 집에오실 시간이 다되어 오는가요
햇살이 넘넘 좋아요
조이님 저도 내일 이른 아침 시간때에 동창회 간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그리고 꽃들이 지금쯤 저를 방겨줄것 같아요
아마 하루 숙박하고 올것 같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셔요
2010년 4.9일 금요일 오전 11시 37 분
2008년 ..3..25일 사진은 마이 모바일 직찍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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