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사랑스런 바보

doggya 2010. 7. 8. 23:05

 

 

사랑스런 바보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컸던 키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살이 빠져나갔습니

다. 어느 시인은 어머니의 손목을 마른 나뭇가지에 비유하기

도 했지만, 나날이 지치고 늙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일은 견디기 힘듭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나도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

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고 이만큼 키워준 은

혜에 보답하고 싶었죠.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돈을 많이 벌

어다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열심히 회사을 다녀 월급봉투를

갖다드렸습니다. 딴에는 엄청난 도움이라도 드리는 양 거들

먹거리기도 했지요. 얕팍한 월급은 생각도 못한 채, 어머니

에게 드리느라 마음대로 쓰지도 못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20여 년이 넘도록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 것은 잊고서 늘

감사해하는 어머니에게 말입니다.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요. 어머니는 내가 갖다드리는 돈

을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고스란

히 저축되어 있었지요. 어머니의 서랍에서 통장을 발견하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나의 효도가 잘못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머니는 결코 돈을 바란 게 아니었습

니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돈을 갖다드릴 만큼 자라난 내 모

습에 마음 든든해했던 것이지요.

나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

에 나는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교까지 졸업시킨 자

식이 바보가 되기로 결정했다면 어머니는 펄쩍 뛰겠지만, 나

의 계획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갑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주

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입니다.

"엄마, 김밥에 넣는 나물 이름이 뭐죠?"

"연근은 자전거 바퀴처럼 생겼지요?"

"감기에 걸렸을 때 먹으면 좋은 과일이 있다던데, 그게 뭐예

요?"

물론 나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설사 모르고 있더라도 인

터넷 검색만 하면 금세 알 수 있는데, 그걸 모를 리가 없지

요. 그러나 나는 공연히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

니는 그것도 모르느냐며 핀잔을 주고는, 눈을 빛내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집에서도 나는 어머니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습니다. 옷에 묻

은 얼룩을 없애는 방법이나 빨래를 예쁘게 개는 비결을 물었

지요. 궁금하지 않아도 물어보았고, 알고 있어도 물어보았

습니다. 바보처럼요.

어머니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자신보다 교육을 많이 받았으

며 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자식이지만, 아직까지 가르쳐

줄 게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습니다. 내게 무언가를 알려줄

때마다 사는 보람은 느낀다고도 하더군요. 아주 작은 일이지

만, 그후로 어머니는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내가 먼저 묻

지 않아도 어머니가 직접 체득한 생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려

애썼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어느 대학의 교수 못지않게

진지했습니다.

부모님과의 대화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라면, 뻔히 알고 있

는 것이라도 물어보세요.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언제라도 시

간을 내어주며, 무엇이라도 가르쳐주려 할 것입니다. 우리

가 던지는 사소한 질문이 부모님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지혜롭고 똑똑한 것은 큰 재산이지만, 가끔은 사랑스런 바보

가 되는 것이 더욱더 아름다운 현명함입니다.

 

 

우리는 아주 많은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지요.

못한 말이 쌓이고 쌓이면 어젠가는 병이 되고 맙니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세요. 그분이 행복해하도록.

 

 

출처 : 당신이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이삭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