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사진 속에 한 소년이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천사 같은 소년 옆에 '오늘도 무사
히'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사진 속의 소년을 바라보고 있
으니 웬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을 무사히 보내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오늘
이 무사해야 어제도 있고, 내일도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동차가 아니
더라도 사고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천재지변 뿐만 아니라 인
재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건물이 무너져 내려 목숨을 잃
을 수도, 다리를 건너가다가 붕괴 되어 강물로 떨어져 참변을
당할 수도, 가스가 폭발하여 함께 피해를 입을 수도, 안전하
다는 지하철을 탔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잃게 될지는 그 누
구도 예측할 수 없다.
친구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문안을 간 적이 있
었다. 그 친구는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
음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을 생각하고 보
니 걸리는 사람도 많고, 정리할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모르
겠다고 했다. 친구는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잘 하고 있다가 세
상을 떠나야겠다고 했다.
친구 말이 맞는 소리다. 언제가 될지 몰라서 그렇지 누구나
세상을 뜨게 돼있다. 그러나 세상을 미리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
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살면서 죽음을 한 번 쯤 생각해 봄
직하다.
나는 결혼하면서부터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면서 살아왔
다. 아마 가족들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자식의 자리,
아내의 자리, 어미의 자리가 크게 느껴졌나보다. 나는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에게 나로 인하여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된다
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사는 편이다. 솔직히 내 자리를 누구
든 대신 할 수는 있지만 혈육의 정과 사랑만은 대신할 수 없
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이 소중한 것이다.
가족이 늘어날수록 삶에 대한 부담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에 따라 책임감도 그만큼 커진다. 나는 싫은 소리를 될 수
있으면 안 듣고 살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
지만 죽은 뒤에도 흉잡힐 일은 남기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외
출을 하더라도 혹시 몰라서 항상 정리정돈을 잘 하고 나가는
편이다. 집에 있을 때는 더러 정리를 안 할 때도 있지만 외출
할 때만은 깨끗이 치우고 나간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장거
리 여행을 할 때는 더 하다. 밑반찬은 물론 김치까지도 충분히
해 놓고 간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에서 1, 2위를 넘나드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싶다. 나라고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준비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말대로 우선 인간관계를 잘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오해가 있으면 풀고 미움은 삭혀야 한다.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래도 아깝다는 말을 들어야지, 잘 죽었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
겠는가?
내가 사후의 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
다. 어머니는 환갑을 넘기시면서 "뭐는 어디 있고, 뭐는 어디
어디 있으니 잘 들어라." 하고 종종 말씀 하신다. 큰딸인 내게
유언처럼 말씀하시지만 나는 심각하게 안 들어서인지 뭐가
어디 있는 줄 모른다.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
다. 죽음은 미래지향적인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 동안의 삶을 차근차근 돌아본다. 나로 인하여 상처
를 받은 사람은 없나, 빚을 진 것은 없나, 고마움을 전해야 할
사람은 없나,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 있나 등등. 상처를 준
사람이 있으면 용서를 빌고, 빚 진 게 있으면 잊지 말고 갚고,
고마운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소중한 것은 무
엇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하루라도 사건 ·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다. 지구 한
편에서는 전쟁까지 벌이고 있어 죽음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한 쪽에서는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로 누
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 사진 속의 천사 같은 소년
처럼 나도 무사함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모두모두 무사하길 진심으로 바
라본다. 그래야 내일 만나 함께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
니까.
출처 : 마중 나온 행복(홍미숙 지음)
비에니아프스키, 침묵의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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