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태산붕알
"연균아, 너 불알 좀 보자!"
가뭄에 애타게 비를 기다리며 마을 앞 당산나무 밑 정자에 앉아
서 하늘을 원망하시던 어른들이 어린 나를 보면 으레 하시던 말씀
이다.
나는 유년 시절 별명이 '태산붕알'이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비
가 올 무렵이면 부풀어 쇠불알처럼 커지곤 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은 나를 불러 세워 놓고 엿을 사준다느니 착하다느
니 추켜세우면서 밑 터진 바지 밑으로 고추를 꺼내 불알을 만져 보
시곤 했다. 그것으로 비가 올까 안 올까 점쳐 보셨는데 그것이 용
케도 몇 번 맞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우리 동네 관상대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후 나는 불알을 헐값으로 꺼내 보여 주기가 싫어졌고, 귀찮기
도 했지만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어른들의 청을 별로 들어주지 않았
다. 내가 예닐곱 살 때였던가. 가뭄이 극심해 모든 농작물이 바싹
바싹 타들어가자 농부들의 한숨 섞인 탄식이 여름 하늘 뭉게구름
만큼이나 높아지고, 간밤에 자기 논에서 물을 빼내 갔다고 여기저
기서 물싸움이 벌어지고, 이웃집끼리도 물꼬 싸움 때문에 말조차
않고 지내는 그런 흉흉한 한 때였다. 어린 나도 비가 오기를 기다
리며, 가끔 골목 울타리 밑에 오줌을 냅다 깔겨대며 아랫도리를
슬그머니 내려다보며 확인하곤 했다.
하루는 정자나무 밑에서 하릴없이 동네 꼬맹이들과 흙놀이를 하
고 있는데, 평소에도 골목에서 나를 만나면 그 넓디넓은 양팔을
떡 벌려 지나가지 못하게 붙들어 놓고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곤
하던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 아저씨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연균이 이놈, 불알 한 번 만져 보자!"
나는 그 어른을 피해 잽싸게 도망을 쳤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서 나는 잡혔고, 잡히자마자 나는 무지막지한 욕을 목청이 찢어져
라 퍼부어댔다.
어느 새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
럼 빙 둘러섰다.
"그래 연균아, 내가 이렇게 손 안댈 텐게 니가 한 번 만져 봐
라."
아저씨는 쭈그려 앉으면서 사뭇 사정조로 나를 달랬다. 나는 마
치 독 안에 든 취처럼 사면초가가 되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어른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아랫도리
에 손을 넣었다. 초가집 처마 끝에 올라가 새 알을 꺼낼 때처럼 잠
시 침묵이 흘렀다.
"연균아, 어쩌냐 비 오것냐? 안 오것냐?"
아저씨는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물었
다.
"비··· 오것소. 비 온당께라우!"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포위망을 빠져나와 집으로 도망쳐 버렸
다.
그날 해질 무렵 투두둑 마른 대지에 흙냄새를 뿌리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흠뻑 비가 왔고 농토는 해갈이 되었다.
그후 그 아저씨는 허름한 약봉지를 소중히 싸 갖고 와 아버지에
게 주면서 말했다.
"태산붕알 치료약은 이것이 잘 듣는다고 허대. 자네 아들놈 이
것 한 번 먹여 보소."
쥐똥 같은 단방약 봉지였다. 어쨌든 그후 나는 비만 오려면 불
알아 부어 오르던 그 병도 나았고, 세월은 이렇게 흘러 이제 그
어른은 만날 길이 없다.(강영균/화가)
출처 : 작은 이야기(정채봉 · 류시화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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