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는 어디로 가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가 숨을 거두려 하고 있었다.
그가 안간힘을 다해 눈을 가늘게 떠서 벽에 붙어 있는 그의 그림자를 찾았다.
그는 그의 그림자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늘 가서 살려고 했으면서도 가지 못했던 곳을 너는 알고 있지?
너만이라도 가다오."
그는 이내 숨을 멈췄다.
유족들의 울음이 쏟아지는 병실에서 그의 그림자는 살며시 나왔다.
'그래 나만이라도 거기에 가자.'
그림자는 어두운 밤길을 훌훌 날았다.
혼자 가니 샛길로 들 염려도 없었다.
쉬지도 않았다.
마침내 반달이 서산마루로 질 무렵에 그림자는 그곳에 당도했다.
푸른 솔밭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실개천, 파도 결처럼 구비진 산자락에
없는 듯이 서 있는 정자. 그 주변에서 향기를 날리며 피어 있는 들꽃들.
그림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주인은 왜 그토록 바빴는가. 무엇 하나 가지고 갈 수도 없었으면서······
왜 그토록 오고 싶어 하던 이곳에 오지 못하였는가······.'
그림자는 먼동이 터오면서 점점 바래어졌다.
해가 산마루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림자는 조용히 낙화처럼 소리 없이 무너져서 섞여 버렸다.
솔 그림자 속으로, 정자 그림자 속으로, 들꽃 그림자 속으로.
출처 : 참 맑고 좋은 생각(정채봉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