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도비

doggya 2010. 9. 5. 09:52

 

 

도비

 

 

 

  "땡~땡~땡~. 땡~땡~땡~.

건널목의 경광등이 빙글빙글 돌며 땡땡이가

울리고 있습니다. 이어 약 7~8초  후 차단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도

로를 가로지른 철도건널목이었던 것입니다.

 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는 아침시간에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있습니

다. 17129, 73618, 23189···.화물칸에 씌어진 글씨도 함께 스쳐갑니

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내 눈은 그 숫자를 보면서 생기가 올라옵

니다.

 한참 주산 배우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머릿속에 주판 하나가 들

어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암산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지나가는 화물열차처럼 씌어진 숫자를 보고 덧셈과 뺄셈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주산 실력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옛날의 그 의욕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숫자가 눈에 박혀들고 있습니다. 1, 7,

12, 9, 36, 18···.연결되어 있는 숫자가 세분되어 뇌리에 박히고 있

습니다. 여섯 개의 숫자조합이 딱 로또인 것입니다.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덜컹~. 덜컹~."

 상행선으로 화물차가 건널목을 통과하는 사이, 하행선으로는 객차

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열차는 일반차량과 달리 좌측통행입니다. 역

이 가까워 오자 통근열차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열차가 저만

치 가는 것을 보니 옛날생각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열차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이 통근열차를 타고 등교시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수업시작

시간까지 등교하기가 빠듯한데다가 열차가 연착하는 것은 당연한 권

리(?)였던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열차통학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늦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

으나, 그 중에서 지각을 하지 않고도 열차통학을 하는 희한한 종족이

있었으니 그들을 '도비족'이라 불렀습니다.

 역으로 집입하는 열차는 역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전방에서 신호를

보고 진입합니다. 또한 정거하기 위하여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즉, 진

행 중인 열차에서 승객이 뛰어내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도비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2분정도 일찍 열차에서 내

렸습니다. 열차가 완전히 설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였던 것입니다.

또한 등교 거리도 줄어들었으므로 지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은 한 달 치 패스를 끊어 통학을 했

는데, 그 중 일부 학생은 표도 끊지 않고 공짜로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교통비를 빵 값으로 날린 경우의 학생들로서 대부분 도비족이

었습니다. 역의 개찰구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도비라는 것은 뛰어 날다, 그 뜻입니다. 무척 위험한 행동

이었으며, 잘못 실수라도 하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까지도 위험했습

니다.

 이 도비는 요령이 있었습니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열

차진행방향으로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그래도 엎어집니다. 그러면 큰 코 다칩니다. 아니, 절단 납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반대로 , 출발하여 진행 중인 열차에 올

라타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속이 붙기 전의 열차를 따라 달리다가 올라타는 것입니다. 이때

의 요령은 손잡이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는 열차 승강대의 손잡이를 잡고, 같은 속력으로 달리다가 매

달리듯 올라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전하게 그림처럼 열차안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열차 떠난 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도비족

게는 예외였습니다. 또래 아이들의 눈에 이들의 행동은 대단히 멋

게 보였습니다.

 도비를 하다 실수하여 사망하거나 반신불수가 된 학생도 있었습니

다. 승강대에 있는 손잡이를 잡지 못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올라타다 그리된 것입니다. 슬픈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차 통학하는 학생도 없을뿐더러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

는 학생은 더더욱 없습니다. 또한 열차가 출발하면 출입문이 자동으

로 닫히게 되어 있어,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비를 하는 것도 블가능하게 되었으니, 도비는 옛날이야기인 것입

니다.

 

 

 세상살이에도 도비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많이 벌거나

크게 성공한 경우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한 것이 아닌 경

우를 도비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로또가 이 경우에 해당될지 모르겠

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동안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세월만 흘러갔

습니다. 어쩌면 내 인생의 열차는 이미 떠나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에 있어, 도비할 수 있는 승강대의 손잡이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

까. 아~ 도비하고 싶습니다.

 

 

출처 : 추억 속의 달챙이 숟가락(이철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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