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준호네 집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있었다. 앞마당
의 병아리들은 삐죽삐죽 노란 입을 내밀며 명아주 풀잎을 뜯었
고, 어미닭은 맨드라미 같은 붉은 모자를 쓰고 새끼 병아리들
을 몰고 다녔다. 닭모이를 뿌려주면 참새들이 더 먼저 포로롱
날아와 모이를 쪼아댔다. 그러면 어린 존호는 한 걸음에 달려
가 참새들을 쫓아버렸다.
"저리가, 이 얄미운 참새들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준호네 식구는 일곱 명이었
다. 준호 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농촌진흥청에 다녔고, 막내 삼
촌은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에 다녔다. 그런데 준호
네 집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둘째삼촌 때문이었다. 삼촌
은 매일 술만 마시고 밤 늦게 집에 들어왔다. 어떤 날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온 적도 있었다. 삼촌은 늘 말이 없었다.
준호 할아버지는 사고뭉치인 삼촌 때문에 자주 화를 냈지만,
이제는 아예 화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삼촌은 준호에겐 늘 따
뜻하게 대해 주었다. 레슬링을 하며 놀아준 것도 바로 둘째삼
촌이었다.
"준호야, 오늘 삼촌이 뭐 사다 줄까?"
"장난감총 사줘, 삼촌. 기다란 총 있잖아."
"알았어. 사다 줄게."
"근데 삼촌 오늘 또 늦게 들어올 거잖아."
"걱정하지 마, 임마. 오늘은 일찍 들어올 테니까."
하루는 삼촌 때문에 집안이 온통 난리가 났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건장한 사내들이 집으로 쳐
들어와 삼촌 손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가버렸다. 할머니는 내
리는 비를 바라보며 온종일 눈물만 흘렸다. 준호는 삼촌과 싸
운 사람이 아주 많이 다쳤다는 마을 동네 어른들을 통해 들었
다. 삼촌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마다 삼촌은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매를 맞았다.
준호 할머니는 둘째삼촌을 가장 좋아했다. 어린 준호는 그
런 할머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준호는 자신이 할머
니라면 대학에 다니는 착한 막내삼촌을 더 좋아했을 거라고 생
각했다.
"할머니는 둘째삼촌이 제일 좋아?"
"왜 둘째삼촌만 이쁘겄어. 다 이쁘지. 준호 아빠도 이쁘고,
막내삼촌도 이쁘고······."
"둘째삼촌은 매일 말썽만 부리잖아. 그런데도 할머니는 둘
째삼촌을 제일로 좋아하는 것 같아."
"이 할미 속 많이 태웠지. 하지만 속 썩으면서도 정이 드는
게 자식인 거야."
할머니는 긴 한숨으로 아픔을 뱉어내고 있었다. 준호는 할
머니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아픈 마
음은 알 것 같았다.
저녁 하늘이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형사에게 잡
혀간 삼촌은 여러 날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로 삼촌은 더 말이 없었다. 삼촌은 누에고치처럼 조그만 방에
들어앉아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준호를 예전
처럼 대해 주지도 않았다. 준호는 이따금 그런 삼촌이 무섭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준호네 집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준호의
집에 불이 나고 말았다.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아픈 몸으로 안
방에 누워 있던 준호 할머니는 미처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이 불난 것을 발견했을 때는 안방까지 이미 불이 번진
후였다. 뒤늦게 도착한 준호 아빠가 불 속으로 뛰어들려 했지
만 준호 엄마가 온몸으로 매달리며 애원했다.
"들어가면 안 돼요, 여보! 집이 온통 불로 덮였잖아요."
"이러지 말라고. 더 지체하면 어머닌 돌아가셔!"
마을 사람들은 이성을 잃은 준호 아빠의 몸을 완강히 붙잡
았다. 준호도 울면서 아빠 손에 매달렸고, 대학 다니는 막내삼
촌은 그 옆에 서서 발만 동동 굴렸다. 준호 아빠는 큰 소리로
발버둥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끝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바
로 그때였다.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달려온 둘째삼촌은 수돗가
로 달려가 통에 담긴 물을 온몸에 퍼부였다. 건장한 마을청년
두 명이 삼촌의 팔을 잡았다.
"놔! 이거 놔! 우리 엄마 죽는단 말야!"
삼촌은 참깨를 털어내듯 단번에 그들을 쓰러뜨리고 불 속으
로 뛰어 들었다. 연기 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있던 음흉한 불길
은 삼촌을 잡아먹을 듯 붉은 손을 내밀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삼촌은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삼촌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지붕 일부가 주저앉아버렸다. 그 순간 시커
먼 연기가 불기둥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아빠도, 막내삼촌
도 더이상은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소방차와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소방대원들은
아주 신속한 동작으로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것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들것에 실려나온 할머니와 삼촌은 급
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도 할머니와 삼촌은 무사했다. 하지만 삼촌은 그날
사고로 등과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구조대원이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삼촌은 온몸으로 할머니를 감싸안고 있었다고 했
다. 물에 젖은 옷을 벗어 할머니 얼굴을 덮어준 채로.
삼촌이 아니었다면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거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준호는 속만 썩이는 둘째삼촌을 할머니가 왜 그토록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사고가 있던 날 저녁,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다녀갔다. 준호
는 그 날 병실 밖에서 엄마, 아빠가 주고받는 얘기를 들었다.
"삼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러게나 말야."
준호 아빠는 아픈 마음을 담배 연기로 달래고 있었다.
"구조대가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머님 손하고 삼촌 손이
옷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면서요?"
"그랬나 봐.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그랬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본능을 꽁꽁 묶어놓고 싶어서
말야."
고개 숙인 아빠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준호는
앞마당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불에 타 흉측하게 변한
집 안에서 어른들은 물건을 분주히 끌어냈다. 준호는 마당 한
쪽에 앉아 여전히 푸른 탱자나무를 바라보았다. 가지마다 매달
린 노란 탱자열매가 별빛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바늘처럼
뾰족한 가시들 속에서 어쩌면 저렇게 예쁜 탱자가 열렸을까'
하고 준호는 생각했다. 불현듯 병원에 누워 있는 삼촌 얼굴이
생각났다. 삼촌의 뾰족한 모습 속에 담겨있는 착한 마음을 생
각하며 준호의 입가엔 어느새 예쁜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힘겨워도, 사랑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
출처 : 반딧불이(이철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