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콜라
종민이 성격은 너무나 내성적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고 낯선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버스에 올
라타면 금세 얼굴까지 빨개졌다. 엄마는 그런 종민이가 늘 걱
정스러웠다.
"종민아,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 좀 해봐, 엄마는 너 때문에
늘 걱정이야."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돼, 엄마······."
"하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테지, 뭐. 아직은 중학생이니
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종민이는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가엔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름을 등에 이고
힘겹게 날아다니던 밀잠자리 한 마리가 자동차 몸체 위에 알을
낳듯 노랑꼬리를 찍어대고 있었다.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동차 본네트는 마치 시냇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곳은 물
속에 알을 낳는 잠자리를 속이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종민이는
막연히 생각했다. 자동차 본네트가 마치 시냇물처럼 보이듯이.
지금 모습이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커다란 교실엔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종민이는 나쁜
시력 때문에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너무더운 날씨
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종민이는 학원에 온 것을 후회하
며 어쩔 줄을 몰랐다. 종민이가 불안한 마음으로 허둥대고 있
을 때 영어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종민이는 금세 얼굴이 빨
개졌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의 근육까지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느릿느릿 교탁을 내려왔다. 그리고 한 손에 책을 들
고 지문을 읽으며 종민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종민이는 고개
를 숙이고 책을 보는척했지만 책 속의 글자들은 온통 개미떼처
럼 줄을 지어 책장을 걸어다닐 뿐이었다.
"종민이는 왜 그렇게 땀을 흘리니? 얼굴도 빨개졌고. 종민
이, 어디 아프니?"
"······."
"날이 더워서 그렇구나."
종민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종민이 옆에서 영어 지문 하나를 다 읽고 나서 교탁으로 걸어
갔다. 그리고는 교탁 위에 놓여 있던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콜라가 너무 맛있는데, 나만 마셔서 미안한테. 억울한 사람
은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그러면 콜라 사줄께."
"정말 가면 사주실 거죠?"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학생들이 갖다 놓은 음료수를 선생님이 교실에서 마시는 걸
종민이는 처음 보았다.
선생님은 다음 지문을 읽으며 종민이 쪽을 향해 걸어갔다.
선생님의 한 손엔 콜라가 담긴 큰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선생
님은 콜라를 종민이 책상 한쪽에 올려놓고 책상 끝에 걸터앉
았다. 그런데 잠시 선생님이 일어나는 순간, 책상이 흔들리
며 콜라가 종민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쏟아진 콜라 때문
에 종민이가 입고 있던 청바지가 순식간에 흠씬 젖어버렸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바지가 다 젖었네. 여기에 콜라를
놓았던 걸 몰랐어."
"······."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선생님에게 종민이는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 온통 젖어버린 종민
이 바지를 닦아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은 그 광경을
보며 숨넘어갈 듯 웃어대고 있었다.
잠시 후,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콜라로 얼룩진 바지
를 입고 종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민이는 뒷문을 빠져나
가다 말고, 강의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교탁 앞
에 서있던 선생님은 종민를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종민이도 선생님을 향해 수줍게 웃어보였다.
종민이는 다뇨증이 있었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소변이 마려
우면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수업을 받다가 갑
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
가, 많은 여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소변을 보러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종민이는 진땀을 흘리며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자
신도 모르게 조금씩 소변을 보고 말았다. 종민이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선생님은 당황하는 종민이에게 다가가
젖어 있는 종민이 바지를 보았던 것이다.그래서 종민이 바지
위에 일부러 콜라를 가득 엎질러버린 것이다.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을 위해 콜라를 쏟아놓고 당황하던 선
생님의 사랑을 종민이는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젖은 바지
를 입고 교실 문을 빠져나갈 때, 엷게 웃어주던 선생님의 미소
를 종민이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시간
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다. 그 기억은 날마다,
날마다 우리를 깨운다.
출처 : 반딧불이(이철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