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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doggya 2010. 9. 25. 16:27

 

 

크리스마스 선물

 

 

아침부터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반이면 천

둥처럼 울리는 시계 소리에 민호는 눈을 떴다. 자기를 두고 가버릴

까 봐 방문에 기대어 잠든 어린 동생을 민호는 차마 보육원으로 보

낼 수 없었다.

 신문보급소로 가는 길에 민호는 언제나처럼 주머니 속에 있는

엄마 장갑을 꺼내 가만히 얼굴에 대고 새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럴 때마다 엄마는 별빛으로 다가와 민호에게 속삭였다.

 '민호야, 언제까지 그렇게 아파할 거야? 이제 그만 엄마를 잊어

야지······.'

 새벽 하늘을 바라보는 민호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왔다.

 "경호야, 이거 먹어."

 "형, 오늘도 돈 많이 벌었어?"

 "응······."

 "근데. 형, 오늘밤에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선물을 가져

오겠지?"

 경호의 물음에 민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저녁,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들이 나비 떼처럼 나폴나폴 어둠 속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새벽, 따갑게 들려오는 시계소리에 경호가 더 먼저

일어났다. 경호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형, 이거 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갔어."

 방문 밖엔 털이 수북한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경

호는 그 조그만 강아지를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다.

 새로 생긴 친구의 이름은 별님이었다. 온종일 혼자 지내는 경호

에게 별님인 소중한 친구가 돼주었다. 어느 날 새벽인가 민호가 잠

결에 눈을 떴을 때, 별님이는 하얗게 튼 민호의 손을 핥아주고 있었

다.

 

★★

별님이는 다급하게 대문을 나섰다. 눈 위에 조그만 발자국을 찍으며

달려갔지만, 이웃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별님이는 숨 가쁘게

교회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별님이가 짖는 소리에 한 사내

가 걸어 나왔다. 사내 뒤를 따라 나온 여자아이가 물끄러미 별님이

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네 집 개가 저렇게 짖는 거지?"
 "배고파서 그런가 봐, 아빠. 다리도 다친 거 같은데 안으로 데리

고 들어갈까?"

  "주인이 찾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근데, 아빠. 강아지가 왜 빨간 끈을 입에 물고 있지?"

 "그냥 물고 있는 거겠지, 뭐."

 바로 그때, '멍멍' 짓고 있는 별님이 입에서 빨간 끈이 땅으

로 떨어졌다. 별님이는 땅에 떨어진 끈을 다시 입에 물었다.

 "아빠, 강아지가 저쪽 골목에서부터 이 끈을 물고 왔나 본

데······."

 골목 밖을 가리키며 아이가 말했다.

 "놔두고 들어가자. 주인이 와서 찾아갈 거야······."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아이는 별

님이에게 다가갔다.

 "넌 어디서 왔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별님이는 '멍멍' 짖으면서 아이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끈을 다

시 물고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별님이가 입에 물고 있던 빨간색 끈

은 좁은 골목을 지나 경호네 집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가 경호

네 집 대문을 들어섰을 때, 경호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장독대 아래

에 쓰러져 있었다.

 경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입원한 지 사흘이 지나 병원

을 나왔다. 그런데 경호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

날 별님이가 없어졌다. 여러 날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별님이는 돌아

오지 않았다.

 

 "경호야, 형 주머니에 있던 엄마 장갑 못 봤니?"

 "응······."

 "어디 갔지? 분명히 주머니 안에 있었는데."

 민호는 저녁 내내 엄마의 장갑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의 장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형, 별님이 어디로 간 걸까? 너무 보고 싶은데······."

 "기다려 봐. 별님이는 꼭 돌아올 거야."

 "정말 돌아오겠지?"
 "근데, 경호야. 너는 왜 별님이란 이름을 지어준 거야?"

 "형이 말했잖아. 엄마는 지금 하늘 나라의 별이 됐다고······.그

래서 별님이라고 한 거야."

 "그랬구나."

 "형! 근데 별님이가 차에 치였으면 어떡하지?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데······."

 순간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힘겹게 누워 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민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호야, 별님이 말야.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다리 아팠었

지?"

 "응······."

 민호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장독대에서 떨어진 경호를 구해준 별님이. 그리고 새벽바람에

하얗게 튼 손을 핥아주던 별님이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엄마였을

까. 엄마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라고 엄마는 별님이가 되어 장갑

까지 가져가버린 것일까.

 민호는 마당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높은 곳에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울고 있는 민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옳지. 슬플 땐 그렇게 별을 바라보는 거야. 눈물이 나와도 꾹

참아야 돼. 너에겐 눈물을 닦아줘야 할 어린 동생이 있잖아.'

 엄마는 푸른 별빛으로 밤하늘을 내려와 울고 있는 민호의 얼굴

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옳지······ 슬플 땐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거야. 눈물이 나와도 꾹 참아야 돼.

 너에게 눈물을 닦아줘야 할 어린 동생이 있잖아······."

 엄마는 푸른 별빛으로 밤하늘을 걸어 내려와 울고 있는 민호의 얼굴을 어루만지

고 있었습니다.

 민호는 엄마가 해주었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보았습니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은거야······."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은거야······."

 

 

출처 : 연탄길(이철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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