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따뜻한 토스트

doggya 2010. 10. 16. 06:59

 

 

따뜻한 토스트

 

 

 

 길가의 가로수들이 마른 잎새를 흔들며 늦가을의 끝자락을

떨구어내고 있었다. 도시의 고층 건물 위로 회색 먹구름이 무

겁게 내려앉더니 금세 눈이라도 뿌릴 듯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재호 씨는 강

의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

했다. 점심을 거른 탓에 시장기를 느낀 재호 씨는 간단하게 요

기를 할 생각으로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좀 주세요."

 "네네."

 아주머니가 버터를 두른 철판 위에 야채를 섞은 계란을 두

르고 금세 노랗게 익혀냈다. 아주머니는 구운 식빵 위에 금방

부친 계란을 올리고 살짝 접어 재호 씨에게 건네주었다. 토스

트를 한 입에 베어 물던 재호 씨가 말했다.

 "눈이 오려나 봐요."

 "눈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손

님이지요."

 "아, 네에."

 재호 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걸인인 듯

보이는 한 사내가 지하도 입구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푸석푸석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에 지저분하

게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를 슬금슬금 피하며 지나갔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하나 더 주세요."

 재호 씨가 말했다.

 "아유, 시장하셨나 봐요."

 아주머니는 서둘러 토스트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건네주었

다. 재호 씨는 그것을 들고 사내 앞으로 천천히 걸아갔다. 사내

앞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백 원짜리 동잔 하나가 흐

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아저씨, 이것 좀 드세요."

 "네, 고, 고맙습니다."

 병색이 완연한 추레한 모습의 사내는 토스트와 우유를 받아

들고는 잔뜩 웅크린 몸을 더 낮게 숙이며 인사했다. 재호 씨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트스트 가게로 돌아왔다. 계산을

하고 가방을 챙긴 재호 씨가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지하도 입

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재호 씨

가 준 토스트와 우유를 들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는 길 옆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네댓 살쯤

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보푸라기투성이의 낡은 검정색 외투

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사내는 토스트와 우유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외투 깃을 올려주

자 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언뜻 보아도 아버지와 딸 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재호 씨는 콧마루

가 시큰해졌다.

 재호 씨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네? 네에··· 그러세요."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빠른 손놀림으로 토

스트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건네주었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는 어느새 조금 전에 앉아 있던 지하도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재호 씨는 느린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

갔다.

 "저··· 아저씨, 이거 하나 더 드세요."

 "네? 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오랫동안 굶었는지 눈이 퀭한 사내는 땅바닥에 시선을 떨군

채 급하게 토스트를 먹었다. 우유팩을 여는 사내의 나무껍질

같은 손이 가늘게 떨렸다.

 잠시 후 사내를 뒤로하고 지하도 계단을 내려오던 재호 씨

는 갑자기 가던 길을 되돌아 다시 하도 밖으로 나갔다. 그러

고는 아까 그 여자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재호 씨가 다가가자 토스트를 먹고 있던 여자아이가 물끄러

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꼬마야, 네 이름이 뭐니?"

 "현정이요. 이현정."

 "그래, 현정이. 아저씨가 선물 하나 줄까?"

 재호 씨가 여자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선물 상자 하나를

쥐어주었다. 여자아이는 상자를 열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예쁜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만 꿈뻑이

던 여자아이의 입이 살며시 열리더니 이내 함박꽃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 인형은 재호 씨가 딸아이에게 주려고 사둔 것이었다. 재

호 씨는 인형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보며 아빠의 생

일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딸을 떠올렸다. 그러나 딸은 이

해할 것이다. 따뜻한 손길을 타인에게 건네는 아빠의 마음을.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재호 씨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겨

울의 짧은 해가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도 하얀 눈이 순결하게 빛나듯, 삶의 진실

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출처 : 연탄길4(이철환 글)

 

 

 

 

'사랑방 > 햇살님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대  (0) 2010.10.1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0) 2010.10.18
타인의 손을 잡는다는 것  (0) 2010.10.15
첫눈  (0) 2010.10.13
너를 기다리는 동안  (0) 201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