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토스트
길가의 가로수들이 마른 잎새를 흔들며 늦가을의 끝자락을
떨구어내고 있었다. 도시의 고층 건물 위로 회색 먹구름이 무
겁게 내려앉더니 금세 눈이라도 뿌릴 듯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재호 씨는 강
의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
했다. 점심을 거른 탓에 시장기를 느낀 재호 씨는 간단하게 요
기를 할 생각으로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좀 주세요."
"네네."
아주머니가 버터를 두른 철판 위에 야채를 섞은 계란을 두
르고 금세 노랗게 익혀냈다. 아주머니는 구운 식빵 위에 금방
부친 계란을 올리고 살짝 접어 재호 씨에게 건네주었다. 토스
트를 한 입에 베어 물던 재호 씨가 말했다.
"눈이 오려나 봐요."
"눈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손
님이지요."
"아, 네에."
재호 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걸인인 듯
보이는 한 사내가 지하도 입구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푸석푸석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에 지저분하
게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를 슬금슬금 피하며 지나갔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하나 더 주세요."
재호 씨가 말했다.
"아유, 시장하셨나 봐요."
아주머니는 서둘러 토스트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건네주었
다. 재호 씨는 그것을 들고 사내 앞으로 천천히 걸아갔다. 사내
앞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백 원짜리 동잔 하나가 흐
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아저씨, 이것 좀 드세요."
"네, 고, 고맙습니다."
병색이 완연한 추레한 모습의 사내는 토스트와 우유를 받아
들고는 잔뜩 웅크린 몸을 더 낮게 숙이며 인사했다. 재호 씨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트스트 가게로 돌아왔다. 계산을
하고 가방을 챙긴 재호 씨가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지하도 입
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재호 씨
가 준 토스트와 우유를 들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는 길 옆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네댓 살쯤
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보푸라기투성이의 낡은 검정색 외투
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사내는 토스트와 우유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외투 깃을 올려주
자 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언뜻 보아도 아버지와 딸 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재호 씨는 콧마루
가 시큰해졌다.
재호 씨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아주머니, 토스트하고 우유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네? 네에··· 그러세요."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빠른 손놀림으로 토
스트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건네주었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는 어느새 조금 전에 앉아 있던 지하도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재호 씨는 느린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
갔다.
"저··· 아저씨, 이거 하나 더 드세요."
"네? 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오랫동안 굶었는지 눈이 퀭한 사내는 땅바닥에 시선을 떨군
채 급하게 토스트를 먹었다. 우유팩을 여는 사내의 나무껍질
같은 손이 가늘게 떨렸다.
잠시 후 사내를 뒤로하고 지하도 계단을 내려오던 재호 씨
는 갑자기 가던 길을 되돌아 다시 하도 밖으로 나갔다. 그러
고는 아까 그 여자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재호 씨가 다가가자 토스트를 먹고 있던 여자아이가 물끄러
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꼬마야, 네 이름이 뭐니?"
"현정이요. 이현정."
"그래, 현정이. 아저씨가 선물 하나 줄까?"
재호 씨가 여자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선물 상자 하나를
쥐어주었다. 여자아이는 상자를 열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예쁜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만 꿈뻑이
던 여자아이의 입이 살며시 열리더니 이내 함박꽃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 인형은 재호 씨가 딸아이에게 주려고 사둔 것이었다. 재
호 씨는 인형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보며 아빠의 생
일선물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딸을 떠올렸다. 그러나 딸은 이
해할 것이다. 따뜻한 손길을 타인에게 건네는 아빠의 마음을.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재호 씨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겨
울의 짧은 해가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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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에도 하얀 눈이 순결하게 빛나듯, 삶의 진실
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출처 : 연탄길4(이철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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