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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와 '촐랑방구'

doggya 2010. 10. 28. 06:44

 

 

 '부침개'와 '촐랑방구'

 

 

 

                                               리 부부는 3년 부터 

                            거동이 불편하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아버지가 오시던 날 저녁, 남편은 자반고등어 살점을 잘 발라 아버

지 밥그릇 위에 올려드렸다.

 "아버님, 많이 드십시오."

 그 모습이 딸인 나보다 더 살가워 보였다.

 사실 나는 남편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속으로 '며칠 저러

다 말겠지. 얼마나 가겠어'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모

습은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남편은 휴일이면 내 아버지를 모시고 공원에 간다. "하루 종일 집에

만 계시면 좋지 않다"면서 노인정에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어느 날 남편이 아버지와 목욕탕에 다녀와서는 실실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당신 아버님 별명이 뭔 줄 알아?"

 "별명? 아버지는 별명 같은 거 없는데."

 "부침개야 부침개, 아버님 맞지요?"

 "그런데 왜 아버지 별명이 부침개야?"

 "당신 못 봤지? 아버님 엉덩이에 둥그런 부침개가 두 개나 있어."

 그러면서 남편은 쥐고 있던 숟가락으로 둥그렇게 원까지 그렸다.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반격을 했다.

 "그려. 난 부침개고 자넨 촐랑방구여. 그새를 못 참고 고자질이여,

고자질."

 그러면서 아버지는 '허허허' 웃으셨다.

 생각해 보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6·25 때 피

난을 가시다가 총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총알이 귀 옆을 스쳐 살점이

날아갔는데, 엉덩이 살을 떼어다가 수술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엉덩이에는 살을 뗀 자국이 큼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뒤부터 남편은 아버지가 좀 심심해하신다 싶으면 부침개 타령이

었다.

 "부침개 아버님, 팔씨름 한번 하실까요?"

 사위의 농담이 싫지 않은 아버지도 응수를 하신다.

 "내가 이기면 자네 뭘 줄 건가?"

 "부침개 한 장 부쳐드리지요 뭐. 김치 부침개로 할까요, 감자 부침

개로 할까요?"

 "촐랑방구! 자네 맘대로 혀."

 부자지간처럼 정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

으면 내 마음은 뭐랄까, '이게 행복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다. 그러면

서 아버지 마음을 늘 편하게 해드리려고 애쓰는 남편에게 정말 고마

운 생각이 든다.

 사실 남편은, 여자들이 꿈꾸는 듬직하고 남자다운 그런 타입은 아니

었다. 오히려 모성 본능을 자극할 만큼 여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

게 불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무뚝뚝하고 무게 잡는 성격보다

가끔 촐랑거리면서 우리를 웃게 하는 남편 같은 성격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

을 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담배를 손녀 필통에 넣어두는가 하면 비

스킷을 한꺼번에 여러 개씩 겹쳐서 드셨다. 밥을 국그릇에 마는 대신,

국을 좁은 밥그릇에 붓는 바람에 넘치기도 했다. 밥이 넘치자 상 위에

떨어진 밥알을 한 알씩 주워 드시기까지 했다.

 "자기야! 아버지가 이상해. 저러다가 치매 걸리시면 어쩌지?"

 "사실은 말이야. 당신이 걱정할까봐 말 안 했는데, 정말 이상해."

 "뭐가? 또다른 행동도 하셔?"

 "저번에 아버님이랑 목욕탕에 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탕 속에서

개헤엄을 치시는 거야. 정말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다행히도 수영장 사건은 남편의 기지로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남

편이 일부러 "아버님, 우리 점심 내기 개헤엄 한번 할까요? 했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이 사람아! 여기가 무슨 수영장이야?"

 그렇게 일갈을 하고는 개헤엄을 멈추셨단다.

 아버지도 우리가 걱정하는 걸 아셨던 모양이었다. 남편 생일 날 저

녁이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방으로 불러 앉히셨다. 그러더니 낡아서

너덜거리는 뭔가를 남편에게 내미셨다. 통장이었다.

 "이게 내 전 재산이여. 자네가 맡아주게. 내가 요즘 자꾸만 헛것이

보이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거 같어. 그쟈? 이상한 짓 하면 내다버

려. 괜스레 애쓰지 말고 양로원이나 보내줘!"

 "아버님, 그런 말씀 마세요."

 남편이 가로막았지만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셨다.

 "내가 사위 복 하나는 타고난 거 같구먼. 맴 같아서야 더 주고 싶지

만 이게 다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챙기는 자네 생일 선물이여."

 얼핏보니까 통장에 든 돈이 상당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정색

을 하고 말했다.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버지를 '부침개'라고 놀

렸던 남편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버님, 그럴 수는 없죠. 제기 이걸 받으면요, 지금부터는 이 돈 때

문에 잘해드리는 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더 이상 아버님하고 살 수

없습니다. 아버님 마음 제가 알고, 제 마음 아버님이 알아주시면 그걸

로 됐습니다. 아버님을 위해서 쓰세요. 저도 쓸 만큼은 버니까 걱정

마시고, 건강하게 사시면서 제가 오래도록 아버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만 해주시면, 저는 그걸로 됐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유복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란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알았네. 고마우이."

 너덜거리는 통장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시는 아버지의 눈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남편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남편은 촐랑이가 아니었다. 불편하신 아버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

해 그런 역활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지켜보던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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