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는 할아버지
영주 씨는 사회복지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새로운 근무
지로 발령을 받은 영주 씨는 아침 일찍부터 출근을 서둘렀다. 지
난밤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 몰랐다. 지하철
을 타고 가려면 육교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육교 계단이 꽁꽁 얼
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계단 중간쯤에서 어떤 노인이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
었다. 눈송이는 눈보다 하얀 노인의 머리칼 위에 수북이 쌓여 있
었고, 노인은 힘겹게 계단을 오르며 눈덩이를 삽으로 떼어내고
있었다.
삽질을 하는 노인은 힘이 달리는 듯 손을 많이 떨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는 것도 노인에겐 너무 힘겨워 보였다. 입김을 하얗
게 내뿜으며 일하는 노인에게로 영주 씨는 조심조심 다가갔다.
"할아버지, 고생이 너무 많으시네요."
"고생이랄 거 뭐 있나?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잖아요. 빙판진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날에는 천하 없는 장사라도 큰 봉변을 당하
고 말 테니."
노인은 고개를 숙인 채 삽질을 하며 말했다. 노인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사실은 저도 조금 전 육교 계단을 간신히 올라왔어요. 할아
버지께서는 연세도 많으신 것 같은데, 이런 일은 저 같은 젊은 사
람들이 해야잖아요."
"젊은이들은 회사 나가야지 이런 일 할 시간이 어디 있나? 이
런 일은 나 같은 노인들이 해도 충분해."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영주 씨는 자신이 공무원이었기에 노인에게 더욱 미안한 마
음이 들었다.
"댁이 이 근처세요?"
할아버지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영주 씨를 바라보았다.
"요 앞동네에 산다오."
할아버지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 아들이 이 육교에서 넘어졌거든. 그때 머리를 다
쳐서 지금까지 삼 년째 방 안에만 누워 있다오. 아들놈 때문에 이
늙은이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렸지."
"그러셨군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내 아들처럼 될까 봐 눈 오는 날이면
이렇게 나와 눈을 치우는 거지요."
영주 씨는 노인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할아버지, 저도 좀 도와드릴게요."
"아니오. 하나도 힘들지 않아. 이것마저 할 수 없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 게요. 나는 삽으로 눈덩이를 떼어내며 자식에 대한 아
픔까지도 함께 떼어내고 있는 거라오. 이 일을 하고 나면 그래도
응어리진 마음이 많이 풀려. 이 일은 아들놈 빨리 일어나게 해달
라는 기도이기도 하니까."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힘겨운 삽질을 시작했다. 영주
씨는 노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
리를 쉽게 떠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노인의
마음이 영주 씨 마음에 아름답게 반짝였다.
아픔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출처 : 연탄길3(이철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