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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맞춤 내복'

doggya 2010. 10. 29. 08:03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 내복'

 

 

 

     "선물로 뭘 하냐고? 고민할 거

없다. 내복이 좋겠다. 요 앞 가게에 가서 내복 두 벌만 사 가지고 오

너라. 참, 둘 다 제일 큰 걸으로 골라 오너라. 포장은 둘 중에 하나만

해달라 하고. 하나는 그냥 갖고 와."

 내가 큰 시누이 생일 선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칠순이 넘은 시어머

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시어머니 말씀대로 내복을 두 벌 사 갔

다. 며칠 후 큰 시누이 생일을 치렀고 시어머니는 포장한 내복을 시누

이에게 선물하셨다.

 '하나만 선물하시면서 왜 두 벌을 사 오라고 하셨지? 그리고 형님은

몸이 크지도 않은데, 왜 특대 사이즈로 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시어머니께 여쭤보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일이 있

나 보다' 짐작하고는 곧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일흔네 번째 생신을 두 달여 앞두시고 시어머니께서 돌아

가시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신 상은 내 손으로 정성

껏 차려드리고 싶었는데······.그토록 바라시던 손자도 안겨드리지 못

했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임신 소식

을 알려드리자 무척 기뻐하셨다. "출산 준비물은 이런 걸로 챙겨놓아

라."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준비해라"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그런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셋에 딸 셋, 육남매를 두셨는데, 둘째 시누이를 낳

으신 서른넷에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한복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40년 동안을 이어오셨다.

 49제를 지내고 옷장에 있는 시어머니 옷을 정리했다. 손수 만드신

당신 한복 몇 벌은 10년이 넘어 보였다. 아직 채 신어보지 못한 스타

킹과 양말, 그리고 버선도 보였다. 맨 아래 서랍의 옷까지 모두 꺼냈

을 때, 포장지로 싼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누가 볼까봐 옷장 깊숙이 넣어둔 물건이면 아주 소중한 것일 텐

데······.'

 나는 그것을 꺼내어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아······.그 상자에는 시

누이 생일 때 준비했다가 전하지 않았던 내복 한 벌이 들어 있었다.

 포장을 풀고 내복을 꺼내어 본 내 눈에는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었

다. 내복 속에는 작은 반지까지 들어 있었다. 돌 반지였다. 아직 태어

나지도 않은 우리 아기 반지였다. 아기 반지까지 준비해 두신 어머니

는 당신 앞일을 미리 아셨던 것일까?

 키가 큰 나는 가끔씩 "배구 선수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큰

키에 팔다리까지 길어서, 겨울에 긴 팔 옷을 입어도 반팔 옷처럼 보이

곤 한다. 짖굿은 사람들은 "춥지 않냐", "왜 짧은 옷을 입었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놀림 아닌 놀림을 받는 걸 시어머니도 아셨는지, 나

를 위한 '맞춤 내복'을 만들어놓으셨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시누이

에게 줄 내복을 특대 사이즈로 사 가지고 오게 한 다음, 거기서 천을

잘라내 내 몸에 맞는 내복으로 고치신 것이었다.

 내복 하의를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눈물이 터졌다. 임산부인 내가

다가올 겨울에 별다는 수선 없이 바로 입을 수 있도록, 허리 부분을

고쳐 늘려놓으신 것이였다. 아이 낳은 후 바람 들지 않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하나하나 뜯어서 다시 재단하시고 고무줄까지 새 것으로 넣어

두셨다. 게다가 평생 해온 바느질로 얻은 관절염 탓에 손목과 손가락

이 불편했는데도, 그 손으로 나를 위해 내복을 만들어놓으셨다. 그런

데도 시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알 길 없는 나는, 무엇에 쓰시려고 내복

두 벌을 사 오라고 하셨는지 의아해하기만 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

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내복을 입어본 나는 또다시 통곡했다. 손목의 아픔

과 저림을 이겨내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들어주신 내복을 입었

으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내복을 입고 그해 겨울을 보냈다.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러 갈 때 제일 먼저 가방에 꾸린 것도 그 내복이었다. 둘째 애

를 임신했을 때도 그 내복을 입고 지냈다. 그 내복에 깃든 정성 덕분

인지 둘째 애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지금도 나를 부르시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 밖에 고구마 장수 왔나 보다. 너 고구마 좋아하잖아. 나가서

사 오너라. 쪄서 너도 먹고 나도 좀 먹어보자."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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