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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울린 순경 아저씨

doggya 2010. 11. 3. 09:45

 

 

귀신을 울린 순경 아저씨

 

  

                       경찰에 입문한 지 1년도 안 되었

을 때의 일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밤 10시 무렵이

었을 것이다. 파출소에는 나와 의경 한 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승용차가 파출소 앞에 서더니, 운전자가 다급하게 들어와서 신고를

했다.

 "저······저······저······저기요. 공동묘지 앞에 사람이 하나 있는데요.

얼굴이 피투성입니다. 빨리 가보세요."

 무서웠다. 그렇지만 신고를 확인하지 않고 묵살할 수도 없었다. 근

무자가 나밖에 없으니 직접 가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의경에게 "사무실 좀 지켜라"고 이르고는 현장에 가보

기로 했다. 오토바이를 타야만 했다. 순찰차는 파출소장님이 몰고 가

신 터였다. 비옷을 입고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여 문제의 공동묘지로

향했다.

 공동묘지에 도착해 대형 플래시로 이곳저곳을 비춰보았다.

 '윽!'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슥한 묘지 중앙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슴푸레 보였는데,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비를 맞으면서 묘지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한 손에는 경찰봉을 든 채로 서서히 다가갔다.

 10미터도 안 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아

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제요? 거기서 무하는겨?"

 경상도 말씨를 흉내냈다. 내 고향은 충청도였다 말이 느리다는 이

야기를 많이 들어온 터라, 선제 공격을 해야겠다 싶을 때는 경상도 말

씨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

리까지 섞여 이상하기만 했다.

 갑자기 문제의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기절초풍하면서 나

자빠질 뻔했다. 진짜 귀신이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 귀신을 건드렸으니······.'

 달아나고 싶은데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귀신이 내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건장한 남자 귀신이었다.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입에서는 피

를 흘리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군대에서 죽은 귀신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빼어 겨누면서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지기뿐다."

 순간, 귀신이 무릎을 꿇었다. 젖은 땅에 엎드려서는 울먹이는 목소

리로 말했다.

 "흐으윽. 아저씨, 제 애인 좀 찾아주이소. 흐으윽."

 "앵?"

 귀신이 아니었다. 권총을 집어넣고는 그에게 말했다.

 "봐라. 니 애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왜 하필이면 여기서 이러노?

비도 오는데 공동묘지에서 뭐 하는 기고?"

 "공동묘지라고예? 으허허헉!"

 여기가 공동묘지라는 말을 듣자 그는 거의 실성한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진정시켜 연유를 물었더니, 군 입대 전 사귀던 여자가 고무신

을 거꾸로 신었다는 것이었다. 첫 휴가를 나왔는데, 만나주지 않는 바

람에 친구들과 이 근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

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입가에 피는 머꼬?"

 "오징어 씹다가 혀를 잘못 깨물어서 그럽니더. 아저씨, 우리 애인

좀 찾아주이소. 으흐흑."

 그는 얼마나 취했는지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오토바

이 뒷좌석에 태운 뒤 밧줄로 내 몸에 꽉 묶어 조심조심 파출소로 돌아

왔다.

 파출소로 들어와 그 녀석을 소파에 앉혀놓았더니 곧바로 잠들어버렸

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그 녀석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 곧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그 녀석이 발광을 하고

있었다.  "내 애인 찾아내라"면서 송곳을 들고는 자기 몸을 찔러대고

있었다. 간신히 송곳을 빼앗아 진정시켰다.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계속 감시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병원에 빨리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병원까지는 10킬로미터 이상을 가야 하는데, 돈도

없고 큰일이었다.

 생각 끝에 결심했다. 내 저금통장을 챙기고, 오토바이에 그놈을 묶

었다.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데, 비는 장대비로 바뀌고······.엄청

나게 짜증이 났다.

 "죽일 놈, 진짜 너무하네. 죽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서 뒈지지. 나

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러는 거야? 정신만 들어봐라. 내가

가만히 내버려둘 줄 아나."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그 녀석이 떨어질까봐 천천히 가는 수밖에.

인사불성이 된 그놈이 들을 수도 없었겠지만, 나 혼자 고래고래 욕을

하면서 화를 삭였다.

 병원에 도착했다. 내 신분증과 저금통장을 담보로 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고 나서 파출소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는데, 지나간 몇 시

간이 수십 년은 족히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경찰이구나'

싶었다.

 면접 시험을 볼 때가 생각났다.

 "자네는 왜 경찰이 되려고 하나?"

 "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 위해서······."

 아마도 나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지난 몇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다음날 오후. 정신을 차린 그놈이 한 손에는 내 저금통장, 다른 한

손에는 음료수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용서해 주이소."

 기분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용서해 달

라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경범죄 통고서'를 그 녀석에게 끊어주면서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해라? 알았재?"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