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이른 아침에 우유 아줌마가 경찰에 쫓긴 이유

doggya 2010. 11. 4. 09:40

 

 

이른 아침 우유 아줌마가 경찰에 쫓긴 이유

 

 

 

          그날 아침은 바람 한 점 없이 후덥

지근하기만 했다. 새벽에 오토바이로 골목골목을 돌며 우유를 넣고는,

출근하는 남편과 아이들 등교 준비 때문에 잠시 집에 들르는 길이었

다. 사거리의 좌회전 차로에 들어서서 무심코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대의 승용차가 서 있었고, 그 뒤로 경찰 순찰차가 신호를 기다리는 중

이었다.

 그런데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순찰차 운전석에 있던 경찰관과

눈이 마주친 게 화근이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 경찰은 한

쪽 손을 차창 밖으로 내밀며 신호를 보냈다. 길가로 오토바이를 세우

라는 것이었다. 못 본 척하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 또 수신호를 보

낸다.

 '무슨 일일까?'

 공연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웬지 머리가

허전했다. 머리를 만져보고 나서야 뭐가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악~, 내 헬멧. 새벽에 설치다가 보급소에 두고 왔구나.'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하루 종일 골목 강아지처럼 돌아다녀도 교

통 위반 범칙금 딱지 값도 못 번다는 생각을 하니 서러움이 복받쳐 오

른 것이다.

 '빵빵' 하는 경적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경찰이 클

렉션까지 울리면서 오토바이를 길옆으로 대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하

지만 모른 체 하고 정차 중인 차량들 사이를 지나 달리기 시작했다. 이

럴 때는 뺑소니가 장땡이다. 그러다가 뒤를 힐긋 쳐다보니 경찰차도

차선을 바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오기가 치솟았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우유 아줌마가 헬멧 한번 안 썼다고 여기까

지 쫓아오겠냐?'하고 생각하고는 골목길로 들어가 쏜살같이 도망쳤다.

 한참을 달아나다가 '이젠 괜찮겠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이럴 수

가······.경찰차가 경광등까지 번쩍이면서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

고 있었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봇대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는데,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다. 순식간에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은 순찰차.

'끼이익' 하는 급제동과 함께 차 문 네 개가 동시에 열렸다. 네 명의

건장한 경찰 청년이 튀어나와 나를 에워쌌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오토바이 헬

멧 안 쓴 거 가지고 이렇게 달려드는 건 뭐람.'

 수신호를 보냈던 경찰이 말을 걸었다.

 "아지매, 우째 도망을 갑니꺼?"

 '그냥 가도록 못 본 척하지. 너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 내가 불쌍

하지도 않냐.'

 속으로는 이렇게 푸념하면서도 애써 웃음 지으며 막 변명을 늘어놓

으려는데, 옆에 선 경찰이 말을 가로막는다.

 "아지매, 우유 네 개만 주이소. 아침부터 웬 날씨가 이리 덥노?"

 그러면서 호주머니에서 권총이 아닌 돈을 꺼내는 게 아닌가. 나는

뭔가를 껴내려는 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가 제정신이 들었다.

 "아, 아저씨들 고생이 많지예?"

 아이스박스에서 우유 네 개를 꺼내 주면서 요구르트 한 줄을 서비스

로 내놓았다.

 "와! 이 아지매 최고다. 고맙심더. 잘 마시고 골목에 나쁜 놈들 없

도록 열심히 지키겠심더."

 그날따라 아침 햇살이 유난히도 빛나 보였다. 그리고 열심히 근무하

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괜한 오해로 서운한 마음을 가졌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오토바이 타고 오늘도 새벽길을 누비는 전국의 우유 아줌마들이여.

어쨌거나 헬멧은 꼭 쓰고 다닙시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사랑방 > 햇살님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의 오후는   (0) 2010.11.07
항아리 수제비  (0) 2010.11.05
귀신을 울린 순경 아저씨  (0) 2010.11.03
장모님은 호떡 장수  (0) 2010.11.01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  (0) 201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