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은 호떡 장수
우리 가족은 아들 하나, 딸 하나,
장모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다. 아내는 내 마음속에 있다. 언제나
30대 초반의 어여쁜 모습 그대로.
나는 무남독녀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큰
아이 육아에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 해주신 장모님 덕분에 우리는 맞벌
이를 했고, 결혼 5년 만에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아내는 자꾸만 둘째 애를 갖자고
했다.
"이 세상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당신은 몰라서
그래. 현수가 장난감이랑 말하면서 노는 걸 보면 꼭 어렸을 적 나를
보는 거 같단 말이야. 자기야, 난 괜찮으니까 현수 동생 하나 만들어
주자."
아내와는 달리 많은 형제들 틈에서 자란 나는 하나만 낳아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아내의 몸이 약한 게 더 큰 걱정
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아내는 소원대로 둘째를 낳았다. 그러나 곧 크나큰 슬픔이 닥쳤다.
둘째가 돌이 되기도 전에 아내가 혈액암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우리 곁
을 떠났던 것이다.
나는 둘째를 제대로 안아준 적이 없다. 그 녀석을 아내 목숨과 바꿨
다는 게 너무도 야속했기 때문일까.
장모님은 딸 없는 사위 집이 불편하셨던지 방을 얻어 나가 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면서 장모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장모님은 둘째인 딸아이가 옹알이를 할 때도 우시고, 일어나 앉았을
때도 우시고, 걸음마를 땠을 때도 우셨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당신
딸 생각에 눈물만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장모님은 둘째 현진이
를 지극 정성으로 키워주셨다.
"할머니! 거······뭐냐. 나 밥 줘!"
현진이는 이렇게 할머니 말투를 흉내 내고 틀니 닦는 시늉까지 하면
서 우리를 웃게 했다. 그러나 장모님은 "노인네가 끼고 있어봐야 배우
는 게 없으니까 놀이방이라도 보내자"고 하셨다.
그래서 그 후 아이를 놀이방에 맡겼고, 여유를 갖게 된 장모님은 동
네에서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님! 용돈이 적어서 그러세요? 날도 추운데 그냥 집에 계세요."
"아녀 아녀. 몸뚱이 성할 때 한푼이라도 벌어뒀다가 쓸 데가 있어서
그래."
아무리 말려도 장모님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어쩌다 휴일 날이면 장모님 옆에서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도와
드리기도 했는데, 사위가 안쓰러워서 그러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더 일찍 장사를 접곤 하셨다.
"호떡은 어두워질수록 잘 팔리는디. 우리 강아지들 땜시 오늘도 장
사 땡이다. 오늘 장사는 여그가 끝이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였다. 케이크를 사다놓고 재촉하는 두 아이
를 달래면서 장모님을 기다렸지만, 밤 9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으셨
다. '장사가 잘돼서 늦는가 보다' 싶어서 기다리다가, 혹시라도 빙판
길에 넘어지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들만 두
고 장모님을 찾아 집을 나섰다.
호떡집의 비닐 포장이 보였다. 비닐 안으로 희뿌옇게 보이는 장모님
은 호떡을 빚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내가 다가가도 고개도 들지 않고
호떡만 누르면서 말씀하셨다.
"얼마치 드러유?"
"어머님, 접니다. 왜 여태 안 들어오세요. 아직도 장사하세요?"
"잉, 자넨가?"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랐잖아요."
"일은 무신? 왜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을까봐?"
"어머님, 추운데 그만 들어가세요."
"아녀. 쬐금만 더 있어보구."
"왜요? 아무것도 아녀."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외식하러 나왔던 친구네 가족과 마주치고
야 말았다. 친구네 가족은 우리와 달랐다. 친구와 아내, 아이 둘이 손
을 꼭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 것일까. 괜히 알 수 없는 부아가 목구멍까지 치
밀어 올랐다.
"어머님! 제발 고집 좀 그만 부리고 들어가세요. 왜 사서 고생을 하
세요?"
순간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친구는 내게 알은척을
하려다 내가 화 내는 걸 보고 그냥 지나갔다.
"알았네. 그만 들어감세."
화들짝 놀란 장모님이 내 눈치를 살폈다.
그날처럼 일찍 가버린 아내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한바탕 소
리내어 통곡하고 싶었다. 너무도 서러웠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의 촛불을 켰다.
"할머니, 아빠. 같이 노래해요."
손뼉 치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장모님은 내 굳은 표
정 때문에 안절부절못하시더니 부스럭거리면서 뭔가를 꺼내셨다.
"구리스마쑤 선물이여."
내 점퍼와 아이들 옷 한 벌씩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애들에게는 장난감을 사주었지만, 장모님 선물
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죄송하고 멋쩍어서 또 화를 냈다.
"어머님! 이렇게 돈 쓰시려고 , 돈독 올라서 늦게까지 호떡 파시는
거예요?"
"그려. 내가 돈독이야 오르긴 올랐지만서도, 우리 강아지들 땜시 늦
게꺼정은 못허지. 아까는 글씨 저녁나절에 워떤 애기 엄마가 5,000원
을 선불로 주면서 호떡을 궈놓아라고 하는겨. 그란디 무신 일이 생긴
건지 통 안 오잖여. 호떡 찾으러 왔다가 허탕칠께베 기두르다가 늦은
겨. 미안허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눈물이 흘러나와서 TV만 보자,
장모님이 미안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미안혀. 담부턴 안 그럴탱게······."
갑자기 아내가 생각났다.
'아, 맞아! 그랬었지. 어머니를 닮은 고운 마음을 그 사람도 갖고
있었지. 내가 그 마음에 빠졌었는데······.'
고개를 조금 돌려 장모님을 봤더니 계면쩍은 미소를 짓고 계셨다.
영락없는 아내의 미소였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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