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心琴)
썩을 것이 다 썩고 남은 영혼의 뼈, 텅텅 빈 마음에서 저절
로 울리는 소리 ―.
잠자리에 누워서 가야금 테잎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가야금을 뜯는 것은 그리움에다 인연이라는 마음의 줄을 이
어보는 일이다.
영혼을 울리는 깨달음의 이 음절···.곱고 맑은 소리(音)는
가슴속에 절은 통한과 설움이 점차 투명해져 내는 휘파람일
게다. 연꽃의 뿌리가 진흙구덩이 속에 있듯 맑은 소리의 뿌리
는 절망과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닐까.
가야금이 울린다.
관현악에 비하면 단조롭고 화음이 없어 처량하지만, 자신의
발견이요, 깨달음이다.
홀로 나서는 산책 ―.
삶의 고비를 넘을 적마다 간절염을 앓던 뼈들이 일어나 일
생을 울린다.
누가 줄을 놓아 영혼을 울리는가. 한 음절로서 만음(萬音)
을 듣고 그 소리를 한데 모아 두 음절을 울리는 가야금···.
한 음절이 울리기까지 깊고도 예민한 귀로 얼마나 많은 소
리들을 귀담아 듣고 있었을까. 가야금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
가 아니다. 한 줄, 한 줄이 만물의 마음과 이어져 만감(萬感)
이 우러나와 온 세상이 한마음이 되는 공감의 음(音)이다.
존재와 존재, 시간과 공간, 찰나와 영겁에 이어진 인연이라
는 소리줄이 양끝에서 울려 그리움의 한가운데서 만나는 소리
여.
산의 천년 명상의 귀에, 강물의 고적한 허리에 매여진 보이
지 않는 마음의 줄이 잠결에 와서 운다.
가야금 소리는 인연을 끌어 당기는 소리일 뿐 아니라, 오히
려 풀어내는 소리다.
침묵, 초월, 달관의 무게가 풀어져서 물이 되어 흘러가는
소리 ―.
고통, 눈물, 절망이 풀어져서 구름이 되어 떠나는 광경 ―.
열정, 안타까움, 아쉬움이 사무쳐서 말없이 손짓하는 이별
의 뒷모습이다.
고요의 한 줄, 신비의 한 줄, 무심의 한 줄···.네 마음과 내
영혼에 줄을 잇고, 찰나와 영원에 줄을 달아 튕겨 본다. 깨달
음의 한 줄, 그리움의 한 줄···.달빛이 배이듯 화선지에 먹물
이 번지듯 울리는 영혼의 음절···.
순리와 이치는 멀리 있지 않다.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 별들의 운행, 생명체는 죽음을 위해
늙어가고 빛깔은 새 빛깔을 낳기 위해 시들어 간다.
머물지 않고 사라지는데 아름다움이 있다.
외로운 날은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농현(濃眩)으로 떨린다.
누가 영혼에 줄을 매어 내 영혼을 울리는가.
달빛에 소리없이 꽃이 지고 있다. 잊을 수 없어 깨어 있는
줄을 울리는 손이여.
그만 줄이 끊어져 눈을 감아도 좋을 가야금 소리 ―.
(글 : 정목일)
출처 : 아주아주 햇빛 좋은 날(현대문학수필작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