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홉 살인 아이
유치원 시절부터 중학교까지 쭉 같은 학교
를 다닌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3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어도 늘 아홉 살 정도의 지능만을 가지고 있었습
니다.
내가 초등학교 6년 동안 그 아이에게 많이 했던 말은
"저리 가", "냄새나", "내 물건 만지지 마"였습니다.
나뿐이 아니라 학교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를 저능
아라 놀리고 같이 놀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아이의 부모님은 그 아이의 두 동
생만 데리고 서울로 가셨습니다. 그 후 그 아이는 증조할머
니,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살았습니다.
그 아이의 삼촌 또한 그 아이와 같은 지능 발달 장애를 같
고 있었고 그 아이의 집에선 누구도 그 아이를 돌봐 줄 여유
를 가진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선지 중학생이 된 후 그 아이
는 학교를 오지 않는 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학교에서 그 아이는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상급생, 동급생, 하급생 할 것 없이 모든 남자 아이들이 그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늘 웃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자기를 바보라고 놀리자 아이는 천진한
웃음을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고 진욱인데~~ 나는 바보 아닌데~~ 왜
자꾸 바보라 카지?"
그날 그 아이의 아홉 살 웃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일기장에 그 아이는 '친구'
라는 이름으로 쓰여졌습니다.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버이날이 찾아왔
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친구가 검은 봉지
를 흔들며 뛰어왔습니다.
"나 카네이션 샀다~ 이쁘지? 이쁘지? 너 줄까? 안 줘~~!
헤헤헤."
"근데 너 왜 카네이션을 다섯 개나 샀어?
증조할머니랑 할머니 할아버지 것만 사면 되는데,
삼촌은 안 드려도 되는 거고~ 돈 낭비 했잖아···
얼른 돈으로 물러와~~!"
"우리 뒷집이랑 옆집에 할매랑 할부지가 있는데~ 자식들
이 안 오더라~ 우리 할매 할부지만 꽃 달고 있으면 뒷집이랑
옆집 할매 할부지가 불쌍하잖아~ 그래서 그냥 샀다."
순간 형식처럼 산 내 손에 쥐어진 두 송이의 카네이션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날 그 친구는 정말 바보같이 자신의 차비조차 남기지 않
고 카네이션을 사느라 두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가야 했습니다.
멋진 농부가 꿈이라던 그 친구는 지금도 아홉 살 환한 미
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아들이 붙여 준 대일밴드(임미영 외 4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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