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수영복
형제들과 함게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친
정 엄마를 모시고 오빠가 예약한 속초 바닷가 콘도에 짐을 풀
자마자 준비해 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수영복을 입고 나
서려는데 엄마는 아직까지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앉아 계
셨습니다.
"엄마, 수영복 없어요?"
내 물음에 엄마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습니다.
결국 엄마는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모래사장
에 앉아 바닷물에 발만 담근 채 물장구를 치셨습니다. 그러다
손자들이 다가와 장난삼아 할머니에게 물을 뿌리고 할머니도
맞받아 물을 튀기다 옷이 서서히 젖어들었습니다.
"엄마, 옷 다 젖었네··· 기왕 젖은 거 들어와서 같이 놀아
요."
"아이구 남사스럽게···."
"뭐 어때요~~"
엄마는 결국 못이기는 척 바닷물에 몸을 담그셨습니다. 그
리고는 이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튜브를 잡고 물장구도 치
면서 나이를 잊은 채 즐거워 하셨습니다. 얼마 후 물에서 나
오신 엄마는 뭔가 아련한 표정으로 내게 나직하게 말씀하셨
습니다.
"얘, 내가 바닷물에 몸을 담근 것이 처녀 적 일이니
까 벌써 40년이 다 되었구나···."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탄식이 불쑥 솟았습니다.
엄마의 수영복을 챙겨 드리지는 못할 망정 '수영복 없냐'는
철없는 물음만 한 무심한 딸. 그러고 보니 엄마는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녀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자식 키우느라 어느 결에 다 흘려 보내고 늘그
막에 자손들과 바닷가에 앉아 수영복을 뽐내는 청춘들을 보는
엄마의 감회는 어떠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올 여름에는 엄마의 수영복을 꼭 준비해 바다에 다시 가야
겠습니다. 허리가 절구통만큼 굵은 수영복일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수영복 패션을 꼭 보고만 싶습니다.
출처 : 아들이 붙여 준 대일밴드(임미영 외 4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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