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을 먹어야 할 때
"다들 가는 군대인데 무슨 걱정이야."
내일이면 훈련소로 들어가는 아들 녀석이 내게 하는 한마
디입니다. 어쩌면 내가 입대할 때 어머니께 드렸던 말과 이렇
게 똑같을까.
나도 지금 이렇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어머니께서 퉁명
스런 내 말에 얼마나 많이 섭섭하셨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감기에 잘 걸렸습니다. 그런
내가 입대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기본교육 6주, 특기교육 4주
과정을 끝내고 하사관 학교에 입교, 16주를 보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 배치 전 잠깐 집에 들렸더니, 어머니
께서 핼쑥해진 내 얼굴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셨습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안됐어··· 밥은 제대로 먹는거니?"
보릿고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나는 군대에서 처음 보
리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군대의 보리밥은 시커멓고, 금세 딱
딱해졌고, 맛 또한 없었습니다. 부식 또한 형편없었고요.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머니셨지만 조금이나마 고통을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온 식구의 보리밥 혼식을 선포하셨답니
다. 혼식 기간은 내가 제대하여 집에 올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그 사정을 몰랐습니다. 제대 후 예전에 먹
지 않던 보리밥을 먹는 가족들이 이상해 물었습니다.
"엄마, 왜 보리밥을 먹어요? 예전에는 안 먹더니···."
"네가 군대에 가서 보리밥을 먹으며 고생하는데 식구들이
무슨 낮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겠니. 그게 습관이 되어 지
금까지 먹고 있는 거란다."
나는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내 자식이 군 입
대하려는 모습을 보니 다들 가는 군대인데 무슨 걱정이냐며
부모님의 걱정을 무시했던 것이 새삼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
지만, 이런 마음을 어떻게 어머니께 전해 들릴 수 있을까요?
"어머니, 저도 보리밥을 먹어야 할 때가 왔나 봅니다."
출처 : 아들이 붙여 준 대일밴드(임미영 외 46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