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의 진수眞髓를 탐구한 행복 미학
최 봉 희(수필가, 글벗 편집주간)
조세핀 김은 재미동포 화가이자 간호사로 월간 『순수문학』과 『문학과 육필시』에 수필로 등단한 작가이자 계간『문예춘추』에 시로 등단한 작가이다.
2012년에 시집『수채화로 그린 그리움』(도서출판 글벗)을 출간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그는『아띠문학』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하여 소설가의 길도 걷고 있는 역량있는 작가다.
수필에서 적절한 문장 표현은 생명과도 같다. 문장이 어설프면 아무리 구성이 잘되고 주제나 소재가 좋다 해도 잘된 글이라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조세핀 김은 시와 수필, 소설을 아우르는 한마디로 전천후 작가이기에 수필에는 그의 글쓰기의 역량이 집대성 될 수밖에 없다.
수필은 상상을 통해서 창작되는 작업이다. 상상은 훌륭한 문학을 창작해 내는 힘이다. 수필이 문학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색과 구상, 작품설계 등과 같은 상상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끝없이 무한한 미가 널려있다. 그러한 것들은 예술 작품과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의 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아름다움을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예술의 아름다움을 현실의 아름다움으로 말할 수는 없다. 문학의 세계는 현실의 재현만이 아닌 작자의 상상에 의하여 여과되고 재구성되어 새로운 창조적 상상을 발휘하는 것이다. 창조적 상상은 글자 그대로 문학창작에 필요한 상상이다. 이 상상은 사고나 이성에 호소해서 감각적 인상들을 재구성해 내는 상상을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신적 심상들인데 이 심상들의 결합이 창조성의 힘이 된다. 그런 면에서 조세핀 김작가의 수필에는 다음과 같은 개성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그의 수필의 문장은 솔직하고도 꾸밈없는 정이 넘치는 소박함이 있어서 좋다. 아버지를 병으로 일찍 여의고 병약한 엄마와 살던 조세핀 작가는 어릴 적 꿈은 자연히 의사였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기 어려웠다. 우연히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간호사였다. 사실 그는 미국에서 하고 싶은 미술을 공부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간호사의 길이었다. 타국이라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학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편견과 차별이 심한 지역에서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행복한 삶이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는 어렵고 힘들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제1부의 글은 바로 병동에서 생활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삶의 일상을 기록한 기록들이다. 에이즈 병동, 암 병동, 호스피스 병동에서 그는 안타까운 생명의 몸부림과 아픈 삶을 지키려는 아우성을 직접 목도했다. 그리고 거기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챨스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에이즈 환자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한 말과 배려,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로서 함께 해주는 그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면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챨스, 넌 이생을 믿니? 다음 세상을?”
“그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여길 떠난 다음에 어디로 가겠니? 전혀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기대에 난 흥분까지 되는데.”
“진짜? 그래? 그럼 나한테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니?”
“뭔데?”
“너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저 세상에 가서, 저 쪽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어? 나도 참 궁금한데.”
“그럼, 약속할 수 있지.”
난 그저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장난삼아 해 본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진지했다.
“그래? 어떻게 알려줄 건데?”
그는 주저 없이 금방 대답을 해왔다.
“New Year's Eve(설날 전날 밤)에 너에게 키스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바로 나야. 그게 너한테 내가 다른 세상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야.”
그 후 며칠 있다가 챨스는 양로원으로 옮겨 갔다. 그 후 한 달도 안 되어 평화롭게 저 세상으로, 그렇게 기대에 부풀어서 기다리던 여행을 떠났다고 양로원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난 챨스에 대한 기억을 화폭에 옮기며 아침을 맞았다.
난 아직도 챨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섣달 그믐날 밤에 키스로 새해를 맞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 아니라는 걸 알았더라도 그런 약속을 했었을까?
- 수필 <챨스 이야기> 중에서
죽음을 앞둔 이에게 간호사이면서 친구로서 서로 공감하는 아름다운 메시지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에 ‘존재’를 기록한다. 하나님이 승인하신 축복의 계수에도 보태진다. 생명의 가호는 탄생과 삶과 죽음을 도와주며 죽음 다음에까지 이른다. 이중에서 사람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건 삶의 영역뿐이다. 늙거나 병들거나 퇴락해버린 상처는 정말 슬프다. 하지만 나눔과 돌봄이라는 치유는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조세핀 작가는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웃을 위해 치유하고 헌신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얻기까지 건강한 아픔이 살아서 대결해야 한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이나 에이즈 병동에는 누구나 가길 꺼린다. 아무나 그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세핀 김 작가는 그 대결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이 행복한 삶의 화석으로 굳어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시간을 선택하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자연사나 병사일 경우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언제 갈 것인가, 또 떠날 때 곁에 있어줄 사람도 선택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는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참으로 신비롭다고까지 할 수 있는, 우리가 모르고 평생을 사는 우리의 초능력이다. 가끔은 왜 그런 대단한 정신력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적절하게 쓰지 못할까를 의아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폴의 몸은 이미 다른 세계에다 한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지만 나머지 한 발을 아직도 이 세상에서 떼지를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가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심지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를 매정하게 떠났던 파트너도 불렀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여기에 있다. 왠지? 아직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고통은 첩첩이 쌓이는 목에 가래와 비례해서 점점 더 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생각해 낸 게 나였다. 다른 간호사들과 얘기를 하다가 나와 폴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알아낸 것이었다.
- 수필 <폴과의 마지막 대화> 중에서
스티븐 코비는『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루 열두 번의 포옹,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신체적으로도 말할 것도 없고, 말이나 눈으로, 혹은 분위기로도 포옹해 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정서적 영양분을 받는 것이나,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는 것도 모두 포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조세핀 작가에게는 간호사 혹은 작가로서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안아주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지워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경험담들이다. 그 때문일까?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주위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참 많다.
둘째, 조세핀 김의 수필 문장은 서사적인 수필로 읽지만 행복 감성이 넘치는 글이 많다. 더욱이 글이 길지 않아서 좋고 선명해서 좋다.
오뚝이는 암에 걸린 걸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주위를 돌아볼 새도 없이 목표를 향해 바삐 달리며 살았을 때에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삶의 축복이 아니고 뭐냐고 말하곤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주위의 정성어린 기도와 관심, 그리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고. 또한 남편하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면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참으로 즐겼었다. 또한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그 결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축복이 아닐까 한다.
- 수필「댄싱 슈즈」 중에서
그는 행복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로 보고 있다. 사람이 아프고 힘들 때, 그리고 외로울 때에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다. 세상을 떠날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을 선택한다. 조세핀 김 작가는 이를 초능력 혹은 정신력이라고 말한다.
행복연구의 대가인 하버드대학교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 대학생 268명의 삶을 72년간 조사한 끝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나 경제적 계층이 아니라 인간관계이다.”
환자에게 따뜻한 배려와 만남, 그리고 정서적인 지지를 통해서 그들을 치유하고 더불어 자신도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행복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긍정적인 생각과 열린 마음,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아니다. 주고 받는 탁구공처럼 좋은 사람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조세핀 김 작가가 존경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발소리에도, 문을 여는 소리에도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몇 년에 걸쳤던 수수께끼를 이제야 풀게 됐구나하는 흥분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걸 의식했다.
얼른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 순간 우리는 허탈감에 배를 쥐어 잡고 웃고 말았다.
그 귀신이란 바로 복도 건너편 병실에 있는 정신이 맑지 못한 여자환자였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주 복도를 서성거리는 걸 방에 데려다 주곤 하던 환자였다.
그 날 저녁에도 겨우 방에다 데려다 놓고 잠든 걸 확인 했었는데….
“What are you doing here?(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I just felt lonely, I just needed somebody to be with.(그냥 외로워서, 그냥 누구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 환자를 자기 방에 데려다 눕혀 놓고, 침대 옆에 앉아서 손잡고 잠들 때까지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부분이 듣는 역할이긴 하지만. 갈 때와는 달리 천천히 여유 있게 널싱스테이션으로 돌아오면서, 오늘도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면서 어두운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에 씨익 웃음을 보낼 수 있었다.
셋째, 조세핀 김의 수필 문장에는 작가의 인품과 행복이 담겨 있다. 조세핀 김 작가는 틈만 있으면 여행을 즐겨하는 작가이면서 열정을 다해 책을 읽은 작가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에게 “언제 행복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라고 생각한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라고 말한다. 조세핀 작가도 아마도 그에 속하는 것 같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조세핀 김 작가의 삶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미술가로서,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역시 조세핀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포옹하는 아름다운 심성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것이 어쩌면 조세핀 작가의 또 다른 행복이자 보람이며 기쁨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하기를 원한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며 산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절대 조건은 무엇일까? 영원한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혹시 큰 것을 갖기 위해 준비만 하다가 결국 오늘을 놓쳐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오는 일을 지금도 하는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해후는 다시 한 번 내 삶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 수필 「행복을 위한 준비」중에서
진심어린 터치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거나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물론이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 에이즈, 암, 백혈병 그리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하루에 한 번씩 만남을 통해서 환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따뜻한 시간들, 사람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수치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물질로 인해 행복감이 증대되고 집중력도 향상되며 사람들에게 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언니는 참으로 힘들어했다.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다거나 또는 혼자 남게 되어 외로워서도 아니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첫 남편과의 힘들었던 결혼생활 그리고 18년 동안 두 번째 남편의 병간호에 전념했던 언니에게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공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고 한다. 마치 삶의 이정표를 잃은 거처럼 마음의 갈등과 방황을 한 것이었다.
그럴 때 나와 자주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또 위로도 해주고 용기를 주다 보니 차츰 언니도 시간과 함께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해 볼까,저것을 해 볼까,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조금씩 한 방향으로 길을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얘기를 하면서 언니한테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훌륭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언니가 좋아하고 쉽게 다룰 수 있는 헝겊을 이용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추천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해 만든 작품이 지난 연말 그룹 전시회에서 팔렸다. 그것도 천오백 달러(백오십만 원 상당)라는 고가에 팔린 것이다. 그때의 언니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저 할 일 없는 노인네가 시간 때우기 취미로 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던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언니는 나에게 할머니도 아니고 아줌마가 아닌 멋쟁이 언니로 불리고 있다. 언니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다.
- 수필「언니」중에서
행복은 인간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것 같다. 수필「언니」와 「우리 고모」에서처럼 조세핀 작가의 행복이 언니에게 그리고 고모에게 전염되고 더 나아가 가족과 이웃에게까지 행복이 전염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 하버드대학의 크리스태키스와 파울러의 연구에 따르면, 내가 행복하면 내 친구나 이웃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15% 증가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내가 행복하면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가능성도 10%, 내 친구의 또 다른 친구의 친구가 행복해질 확률은 6%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조세핀 작가의 행복이 열린 마음과 배려, 그리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가운데 이웃에게 행복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갈 때 옛날과 같은 모습을 기대했든 아니 그러기를 바라던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을까? 이번에 뵌 약해진 고모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고모는 사시는 날까지 내 기억 속에 있는 씩씩한 모습 그대로 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가능한 한 자주 뵙고 외로움도 덜어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앞으로 나를 몰라보는 때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있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고모님을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래야만 돌아가신 후에라도 내 마음이 편할 거 같아서 말이다
- 수필 「우리 고모」
조세핀 작가는 환자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서 그는 행복을 찾고 있다. 타국에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그럼에도 그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계를 통해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로 인해 내 주위의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길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조세핀 김 작가의 수필을 통해서 깨닫는 행복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