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사랑스러운 여인

doggya 2010. 8. 5. 08:53

사랑스러운 여인 / 조세핀 김

 

 

어릴 때 나는 애들과 모여 노는 것보다는 책 속에 파묻혀서 미지의 세계로 끝도 없이 내달리며 나만의 세계 속에서 꿈을 꾸는 걸 좋아했었다. 그때 읽은 책의 양은 아마도 내 평생 최고의 양이었을 거다. 짧은 시간 동안 세계문학 전집과 한국문학 전집을 매일 연속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어 젖혔으니 말이다. 물론 생각하고 음미하고 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당시 우리 집은 그 많은 책들을 비장해 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도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모두를 비치해 놓고 있어 한 권씩 빌려다 볼 수 있었으니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빨리 읽고 다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작정 다독을 하게 했던 거 같다. 그때 읽은 책들의 제목들이야 당연히 다 잊어 버렸지만, 아마도 읽으면서 꿈을 펼 수 있게 해 주었던 부분들은 내 세포 속에서 잠자며 가끔씩 나를 일깨우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읽은 글 중에서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며 생각할 때마다 미소 짓게 하는 글이 하나 있다. 누가 쓴 글이었는지 작가도 지금은 잊어버렸다. 단지 제목이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으며 왜 그녀가 사랑스러운지에 대해서만 생각날 뿐이다. 그때는 그녀의 변신이 참 재미있어서 열심히 읽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여인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낼 만큼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참 지혜로운 여자였던 거 같다.

 

사랑스러운 그 여인은 남편과 몇 번 사별을 하고 몇 번 재혼을 하게 된다. 요즘의 헐리웃 배우도 아니면서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의 결혼이라니, 특히 그 글을 썼을 당시의 여인치고는 참으로 팔자도 드센 여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가 되면 주위의 눈길을 견디기도 힘들었을 테고, 자신의 불운을 자책하여 상실감에 빠져 삶의 의욕마저 버렸을 거 같지만, 그 여인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매번 남편을 잃을 때는 슬퍼하지만, 곧 다시 결혼할 때마다 그때의 남편이 최고이고, 남편이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는 것뿐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 결혼할 때마다 지난 것은 까맣게 잊고 새로운 남편과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것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생활에서 행복을 찾고 그 남편이 죽으면 또 다음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어찌 보면 지조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받아 마땅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계산된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선 철저하게 진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그 누구도 그 여인을 미워할 수 없었다. 아니 순수한 그 여인의 마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인정해 주었다. 어쩜 줄거리에 대한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사랑스러운 그 여인은 그런 여인이었다.

 

사람의 행동에는 계산을 한 의도적인 것이 있고, 계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행해지는 순수한 행동이 있는데, 작가가 그린 이 여인의 그런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순수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한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아름다운 생존의 방법이었던 거 같다. 세상 경험도 없고 물정도 모르던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그녀가 인상적이었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꿈 많은 어린 소녀가 아닌 세상 풍파를 많이 겪고 난 지금도 그 여인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또한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절대로 과거에 연연하며 한탄하거나 그걸로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진취적인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하는 일에 한 치의 부끄러움을 가지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있게 현재에 충실하는 생활태도인 것이다. 그 여인의 생존 방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당당하게 실천하고 싶다.  


계간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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