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후원 ♧
♧창덕궁 고궁 후원,존덕정 일원,과 연경당 , 그외 ...♧
#그녀의 여행기
#자작글
창덕궁후원 금원 이랴고 불렸으며
비원은 일제때 지어졌다 1406년 태종실록에따르면 4월에 세워진것보인다
*1459년후원좌우에 연못을만들고
*
1463년확장
임진왜란 때불탔으나 창덕궁과함께
광해군 때 복원
이후 여려왕들을 거치며 지금모습
후원은크게 네가지 영역나뉜다
*부용지 부용정
*주합루 영화당 서향각이있는지역
두번채는
*기오헌 기두각
*애련지 애련정
세번채는
*관람정 존덕정 승재정 있는곳이다
네번채는 옥류천 취한정 소요정 청의정태극정
본래의 모습을유지 꼭필요한곳만 인공적으로 꾸며 놓아
우리나라 조원의특징 가장 잘반영하고 있다
후원 왕의동산 뜻에서 금원
비원은 일제때 용어이다
출처 다음백과 발췌
검색 한자료입니다
자그럼 저와함께 후원을 구경해보실래요
*창덕궁 후원 입장료 \5000원
*창덕궁 입장료 \3000원
\8000원지급해야 관람할수있답니다
관람동선 변경 안내
혹한기, 혹서기에는 관람객 안전 및 자연 생태보존을
검토하여 관람동선의 일부를 축소운영하고 있습니다.
- 운영기간 : 혹서기(7~8월) 및 혹한기(12~2월)
- 변경내용 : 관람시간 90분→ 70분(20분 단축운영)
- 관람동선 : 후원입구① - 부용지② - 애련지③ -
관람지④ - 연경당⑥ - 향나무길 - 퇴장
#승재정 현판
#펌우사 현판
지붕이 모양이 용과 연꽃 그리고봉황
#관람정
#승재정
#관람정 과승재정
#존덕정
육각형의 이중지붕
존덕지에있는정자로 인조때만들어진
당시에는 육각정 지붕이부채꼴
지붕아래에는 정조가나무판에 쓴글이 걸려있습니다
글의 제목은 자신을 달에비유하고 개울을 백성으로비유하여
달빛이개으ㅜㄹ을비추듯 백성을골구루 살피겟다 애민사상과
충성을 요구하는내용
존덕정 북쪽에 있는 작은 연못은 반월지라하는데
이물이 관람정 정자로흘러 앞연못인 반도지로흘려간다고합니다
#존덕정
천장에 쌍용이 여의주를 회롱하고 있눈 그림은 ~
부지련히따라다니면서 찍어서 흔들렷네요
왕권을 상징 했다고합니다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창더궁 홈페이지서 발췌 )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고합니다
250년 된 은행나무
정조는 인공과자연의조화가 잘이루어진 존덕정일원을 찾아서 주변풍경을
즐겼으며
창덕궁사계절 경치가가장 아름다운곳이라로합니다
다시한번 방문해봐야되겠군요
#펌우사
효명세자가 독서를 하는곳
효명세자는 순조의 맏아들이며
영특하고 똑똑해서 대리청정을하면서 왕정을회복하려고했으나
21세의 젊은나이로 홍서 (왕이나왕족의 죽음)하는바람에
그뜻을이루지못하고 비운의 인물
효명이란 뜻은 이름그데로 효성스렵고 명민하다고
그명민함은 뛰어난 문학 에술적 능력이뛰어났다고합니다
숲을 향해 잔디밭이 깔려있고 복판에 건물이 들어섰다.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친다는 뜻의 폄우사
. 왕이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건물이 아니라 가는 길에 놓여있는 돌이다.
어른 보폭으로 맞춰 잔디밭에 박힌 돌을 따라 걸어보자. 자연스레 팔자 걸음이 된다
. 돌의 앞부분이 바깥을 향하기 때문. 왕의 양반 걸음 연습 장소였다.(검색한 글입니다 )
#관람정
평면이 부채꼴모양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랴고합니다
관람은 닻줄 배띄움을 구경한다는 듯이랴고합니다
여기에서도 석물이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사대부 집을 본뜬 연경당
권역을 관람했습니다
#
연경당(演慶堂)(보물:1770호)과 선향재(善香齋)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연경당은 2012년 보물제 1770호로 지정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서발췌 )
임금님의정원 궁궐주택
이제까지의 연구에서는 창덕궁 연경당은 1828년(순조 28)에 창건되었으며, 사대부의 생활을 알기 위하여 세자(1830년에 죽은 뒤 익종으로 높임)가 왕께 요청한 것이 건립동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국여지비고』·『궁궐지』·『순조무자진작의궤부편(純祖戊子進爵儀軌附編)』·『순조실록』·「동궐도」 등을 종합하여 해석하여 보면, 연경당은 1827년에 진장각 옛터에 창건되었으며, 짓게 된 동기는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경축의식을 맞아서 이를 거행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연경(演慶)’이라는 이름도 경사스러운 행사를 연행(演行)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한편, 「동궐도」의 창덕궁 연경당 모습과 『순조무자진작의궤부편』 도설(圖說)에 실린 연경당도는 일치하지만, 현존하는 연경당의 모습과는 다르다. 따라서 현존하는 주택형식의 연경당이 1828년에 세자의 청으로 지어졌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헌종 때에 『궁궐지』를 간행하던 당시에는 연경당에 익종의 초상화를 모셔놓았다고 하므로,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의 주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비변사등록』·『일성록』·『승정원일기』 등에는 헌종12년(1846) 초에 연경당이 신건(新建) 되었다는 기록과 고종 2년(1865)에 수리공사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어, 현재와 같은 주택으로 완성된 시기는 고종연간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연경당에 대한 사료로는 1890년대 이후에 제작된 『궁궐지』와 「동궐도형(東闕圖型)」및 건물의 기둥에 걸어놓은 주련(柱聯) 등이 남아 있어서, 원래의 연경당이 언제, 왜 주택건축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해명하는 데 기초자료의 구실을 하고 있다.
출처 다음 한국민족 문학 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일단 사대부 집처럼
바같과 사랑채 행랑채 소탈한 모습도 느낄수 있었어요
연경당 권역은 궁궐과는 달리 사랑채 안채 행랑채 서재
후언 연못을 갖추고 있는사대부 집안의전형적인 저택
일반인들은 안살고 그래도 여기 왕족들만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에 부리는 하인들도 지냈겟죠
도로레같은데 일종의 브라인드역활을 했다고 해설사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요
#선향재1828년 효명세자가 지은 120칸의 민가형식의 집
연경당 동쪽에 14칸짜리 건물로 책들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서재
선향재란 좋은향기가 서린집이라는 듯
책을 보관하던곳이 기에 좋은 향기란 책향기를 가르킨다
창덕궁 후원에도 여전히 작은문들이 많았습니다 미로처럼요
현판 눈에 보이는 데로 담아 보았습니다
#우신문
연경당은 사대부가의 건물양식과 같이 사랑채와 안채 지어졌는데
그사이를 담장을구분해놓았다고 합니다
우신이란 돕기를 거듭한다는 뜻 의미한다고 합니다
방문을 열어두어도 외부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한옥의 특성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 되어있다고 합니다
#통벽문
연경당 안채의 뒷편에 부엌으로연결되는 문입니다
통벽이란 푸른곳으로 통한다는 의미랴고합니다
#정추문
정추란 한창무르익는 가을 이라는 의미라고합니다
연경당으로 향하는 마당쪽에위치하는 문입니다
난방 하는곳인가 봐요
느티나무 나무의황제라고합니다
창덕궁 향나무 여기도못들어가게했어요 아마 여기서
끝났을것 같아요 해설사님 해설이요
#창덕궁 향나무 입니다 (천연기념물 제194호 )
수령이 750년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이야기가 샛길로 새었나요 동선은 창덕궁
향나무길을 빠져나와서 일일히 해설사님께인사들드리고 창경궁과
유리온실을 관람하고서 또다시 창덕궁 쪽으로 되돌아옵니다
여기서도 검표를 하더군요 우리는 나가는 것이라고 요 인사를 하고요
되돌아보지 못한 권역을 오다보니 궐내각사인것 같네요
관람코스로는 검서청 규장각 선원전 양지당 약방 들이 있습니다
#검서청
서적을 점검한다는 뜻 조선시대 서책을 교정
검서관들의 사무를 보는곳이라고합니다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운한문
규장각뒤로있으며 운한문은 봉모당 들어가는문이다
운한은 은하수란 뜻이라고합니다
운한에는 하늘과 임금의아름다운 덕이라는뜻도 있으며
특히제왕의 필묵이라는 뜻도있다고합니다
하지만 봉모당 은 비공개지역 인것 같았습니다
#책고 책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뜻이라고합니다
서고 하는 말과 같다고합니다
책고(冊庫)’는 ‘책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고(書庫)’라는 말과 같다.
#정숙문 ~구선원전에 나와있는문 이다
정숙은 바르고 엄숙하다는 뜻이다
역대임금님들에게제사를 지내던선원전에 딸린문 이므 로 엄숙하고
태도를 가지라는뜻이다 숙은 가을으이기운을 나타내고
가을방위 서쪽에해당해 서문에다 이름을 붙혔다고 합니다
#양지당
구선원전 동편에자리잡고 있답니다
양지당은 임금이 선원전으로 제사를모시거나 참배하려갈때 여기에머무르며
재게 하였던곳이며 어재실이라고합니다
임금의 초상화나 임금이쓴글 씨 등을보관하는 장소이기도합니다
양지뜻은 엄숙하고 고상한뜻을 기른 다 의미한다고합니다
양지당은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근래에다시복원 되었다고 합니다
양지당을 중심으로 세개의문이 있다고합니다 만복문 만안문 만수문
*만복문은 말그데로만가지복이란의미 선원전에 모셔진혼령들이 만기지복을 누리라는 의미
*#만안문
만안이란 두루 평안하다는 뜻이라고합니다
양지당이 구선원전의 재실이므로 역대임금들의 혼령이 두루편안하고
안식하리라는라는 의미라고합니다
*만수문
만년토록장수한다 의미 선원전에 모셔져있는혼령들이
길이길이 영원하리라는 의미를담고있다고합니다
#보춘문
구선원전 앞마당에 동쪽에나있는문으로
양지당으로 통하게 되어있다
보춘은 봄을알린다는 뜻이라고합니다 동쪽문이므로
오행에서 동쪽에해당하는 봄춘자를
사용했다고합니다
왕의 초상화를 모신곳은 선원전이라고 합니다
임금의 조상 선왕들의 어전 을 모시고 에를 올리는곳
신선원전은(후원 ) 들어갈수가 없고요 구선원전을 보면
자세히알수가 있다고합니다 옥류천 일대도 위험하고 겨울이고 해서
관람할수 없다는것 같았어요
#만안문
인정전 서편 담장에서 양지당으로 통하는문
만안이란 두루 평안하다는 뜻이라고합니다
양지당이 구선원전의 재실이므로 역대임금들의 혼령이 두루편안하고
안식하리라는라는 의미라고하빈다
인정전은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아마 창경궁 식물원 관람하고 서 창덕궁으로 되돌아가면서 관람했나봅니다
#블로문
#블로문
임금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덕궁 내의유일한돌문 통돌을 깍아서 만든문이라고합니다
다들 늙지않는다고 하니좋아하셨습니다
다시 뒤돌아봅니다 블로문 지나서요
다음몇컷은 모셔온 사진입니다 인물인증샷은요
금마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궁궐의 현판 가끔 아는한문도 있지만흘림체 로 모르는 한문 나오면
시어머니가 무식이 탄로날지랴도 늘 울 이뿐며느리에게 문의하면
1초만에 답을알려준다
이제어느정도 궁궐 현판을 많이알게되었을까요
또 방문하게되면 또잊어먹더랴도 기록해둔것 기억더듬으면
고궁을 방문하면서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운 공부보다
발로 뛰면서 역사를 또다시 배우고 알게 되어서
과거와 현재를 타임머신
타듯이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무척 즐겁습니다
인물인증샷은 모 셔온사진입니다 주로제사진으로만 편집
#부용정
1707년에 지은 택수재를 (정조16녕 고쳐지으면서 부용정이라고 했다고합니다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기단 남면과 양측면에 계단을 두어 툇마루로 오르게 되어 있으며, 정자 북측에 파놓은 넓은 연못[方池]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북쪽 연못에는 정자의 두리기둥 초석들이 물 속에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툇마루에는 아름다운 평난간을 돌렸다. 부용정 앞의 부용지는 네모난 모양이고 연못의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으니 이는 신선들이 논다는 삼신선산의 하나인 방장이나 봉래 또는 영주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연못에는 서북쪽 계곡의 물이 용두로 된 석루조를 채우고 넘치는 물은 연못의 동쪽 돌벽에 있는 출수구로 흘러나가도록 되어 있다.)
(출처 다음백과에서 발췌 )
창덕궁 향나무입니다
이사진은 또다른분이 편집해주신 사진입니다
자구경은 잘하셨나요 아쉽지만 후원은 이정도 구경하고서
부족하셨나요 더욱더 궁금하신 분은 직접 관람해보셔요
창경궁으로 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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