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물인가 봐 / 조세핀 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어 온 질문이다. 많은 사람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대답하기가 곤란했었다.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고집이었다고 나중에서야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의 어린 나에겐 맘에 없는 말을 엉터리로 대답한다는 게 참 어려운 거였다. 그러다 한참 후에 커서 만난 지금은 작고하신 소설가 한 분만이 정말로 내 마음에서부터 존경한다는 생각이 든 유일한 사람이었던 보면 나름대로 기준이 꽤 엄격했던 가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닮고 싶은 사람은 있었다. 바로 슈바이처 박사이다. 바깥세상 보다는 어린 애 답지 않게 책 속에 묻혀 살던 시절에 읽은 위인전의 내용이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지만, 닮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다. 글을 쓰며, 음악을 하고 그리고 사심 없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술을 베푸는 것이었다. 일생동안 한 가지만 이루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가 가장 큰 의문이었으며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노벨상도 받은 그도 식민주의를 예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니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전할 수는 가 보다.
커가면서 내가 닮고 싶은 부분이 바뀌었다. 슈바이처 박사의 그 많은 재능보다는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그 기술이 부러웠고 그것만이 닮고 싶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학창시절에는 그저 좋은 학교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성공의 척도로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꿈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오늘을 살아가기에 바빴었다.
미국에 와 내가 좋아하는 미술을 공부하다가 중간에 잠깐 외도를 해 간호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힘들었지만 나도 슈바이처 박사를 조금은 닮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이것이 바로 나의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궂은 일도 마다치 않고 누구에게나 따뜻한 나를 나의 환자들이나 그 가족들 그리고 동료까지도 천사표란 별명을 붙여 주었으니 나만의 환상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한 거 같다. 하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는 어릴 때부터의 꿈을 저버릴 수 없어 일하면서 다시 미술학교를 계속하게 되고 그렇게 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미술학교도 마치고 전시회를 하고 조금씩 알려지면서 피카소 만큼은 안 되어도 이만 하면 그런대로 내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다시 고개를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 기술을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평화봉사단이었다. 내 기술로는 충분히 자격이 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한번 부임을 하면 의무적으로 일해야 하는 기간이 내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길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래저래 망설이고 있던 중에 지난 번에 갔던 아프리카 여행에서 3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분은 원래 스위스 사람으로 오래전에 미국시민이 된 사람인데, 교육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 분의 봉사활동은 캐톨릭 재단을 통해서 이루어 진 거 였었는데, 대학에서 의과를 가르치는 남편도 3년이란 시간의 봉사를 후원해 주었고 또 가끔 시간을 내어 현지로 와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시간만 나면 질문을 하고 자기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곤 했다. 그런데 날이 가고 얘기가 점점 길어 질 수록 난 못 할 거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너무나 가난한 곳이기에 물자가 부족해 연필 하나라도 잠깐 한 눈 팔면 도둑을 맞는 건 다반사라지만, 그건 그래도 괜찮은 거 같았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울 거 같았던 건 위생문제였다. 빨래를 해서 널면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알을 까 놓아서 나중에 이불을 덮거나 옷을 입으면 체온으로 그 알들이 깨어나 피부염을 일으키고 오염 때문에 물을 그냥 먹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쳐도 물 부족으로 물수건을 끓는 물에 적셔 몸을 닦는 것이 목욕이었다니....... 지붕이 새서 항상 집안이 꿉꿉했지만, 그건 참을 수 있다 해도 무언지 모를 벌레가 피부를 파고들어가 알을 까서 목에 20-30개의 쥐젖 같은 혹이 주렁주렁 자라 하나씩 거울을 보고 가위로 잘라냈다며 흉터를 보여줄 때는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나의 꿈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또한, 그 분이 정말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분은 자기 자식을 낳지는 않고 소년원에서 문제아를 입양해 키워 이제 어엿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면 잠시 쉬고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노구의 몸을 이끌고 봉사활동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사랑과 봉사를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그 분을 보고 내가 생각해 오고 바라던 봉사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된 쓰레기 같은 것이었는지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나는 지금도 그분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분의 다른 면을 모르기에. 하지만, 남을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그 용기와 사랑은 닮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처럼 그런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분명히 난 속물인 가 보다.
<아띠문학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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