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구겨진 젊은 날의 꿈

doggya 2010. 7. 31. 01:09

구겨진 젊은 날의 꿈 / 조세핀 김

 

 

오늘 너무나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다운타운 길거리에서 종이에 커다랗게 Homeless, Help(집없는 사람,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사거리에 서서 구걸을 하는 꾀죄죄한 그를 본 것이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아마도 리처드였던 거 같다. 아니 리처드라고 해 두자.

 

그러니까 간호학교 시절로 기억을 돌려야겠다. 학생 시절 몇 년에 걸쳐 병원 실습을 나가지만, 정신병원은 마지막 학기에 나간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고 교수들은 말을 했지만, 다른 병동과는 달리 육체적인 일이 아닌 정신병원의 실습은 일종의 휴가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난 좋아했었다. 물론 실습이 끝난 날은 그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로 밤을 새워야 했지만, 그래도 심리학을 좋아해 간호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정신병동이라서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거 같기도 해서 한편으로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첫 날 나에게 배당된 이번 학기 동안 돌봐야 할 환자는 리처드 김이었다. 김이라면 한국사람일 텐데…… 아마도 내가 유일한 한국사람인 관계로 나한테 그 환자를 배당해 준 것 같았다. 한국사람이 이런 곳에 있다는 것에 약간은 놀랬지만, 호기심도 발동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을 게다. 아무도 없는 긴 복도를 지나 그의 방을 찾아가 문을 노크했을 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혹시 자고 있는걸까?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방이 너무나도 지저분하고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 같으면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신병동에서는 자신의 몸과 주위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규칙을 어기고도 잘 지내고 있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간호사들에게 물어서 그를 찾은 곳은 휴게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뚝 떨어진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한국사람을 보고 그가 리처드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진짜로 너무나 보기 흉한 몰골이었다. 머리는 빗었는지, 세수는 했는지, 옷은 갈아입었는지…… 일단 그의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나를 소개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 저 밑에서 진한 연민의 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모두 다 성공 사례들만 자랑하고 대서특필하는 한인사회에서 잊혀진 한 청년을 이런 곳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아마도 같은 한국사람이었기에 느끼는 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 간호사, 리처드는 유일한 한국인 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두 번을 만났을 때는 영어로만 말을 하던 그가 세 번 째 날 갑자기 너무나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머리도 말끔하게 빗고, 목욕을 했는지 연한 비누 냄새도 났다. 옷도 좋은 걸로 깨끗하게 빨아 갈아입었는데,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그의 손에 써 놓은 몇 개의 글자였다. 꼭 쥐어진 두 주먹을 테이블 위에 얹고 미소를 머금고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는 처음 봤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리처드는 누가 보더라도 참으로 준수한 생김새였다. 참, 그의 손에 쓰인 글자…… 주먹 쥔 양손 여덟 마디에 까만 잉크로 진하게 쓴 Love라는 글자가 보는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쑥스러워하면서 손을 감추는 모습이 너무나 순진한 사춘기 소년을 연상케 했다.

 

그의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다. 시카고에서 유명한 주립대학을 3학년까지 다니다 병이 난 것이었다. 리처드가 5살 되던 해에 부모가 이민을 오게 됐는데, 리처드는 조부모에게 맡기고 3살 난 동생만 데리고 떠나 버린 것이었다. 정착하면 데려간다는 말로 이해도 못 하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리처드를 매정하게 떼어 놓고 떠나버린 것이었다. 한동안은 아무하고도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컸었다고 했다. 참 오랫동안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에 부모가 리처드를 데려왔고 그 때부터 우울하던 성격도 바뀌어 이제부터라도 부모의 사랑을 다시 찾겠다고 동생보다 뛰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했다고 했다. 노력의 댓가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대학에서의 성적도 아주 좋아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공부했으니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참한 아가씨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앞날의 설계였으리라. 하지만 3학년 일학기를 마치면서 이상한 증세를 보여 정신과 진단을 받게 되고, 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주어진 것이었다.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부모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실망이었지만,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몇 년을 치료에 매달렸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을 정기적으로 드나 들며 나았다 더했다를 반복할 뿐 완치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부모의 마음도 점점 리처드에게서 멀어져 가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원에서 거의 폐인이 돼 버린 것이었다.

 

네 번째의 만남이 되는 날 병원에 갔을 때 교수님과 담당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그 환자의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환자를 돌보기를 권했다. 나로서야 안 할 이유도 없고 또 차도가 많이 있다니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처드와 보내는 하루는 거의 그가 말을 하는 날이었다. 지난 이야기부터 앞으로의 설계 그리고 생각들을 상기된 얼굴로 얘기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참으로 기뻤다. 전에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반항하는 일이 잦아서 안정제를 먹었지만, 이젠 그 양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표정과 말, 그리고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우릴 봤으면 아마도 아주 오랜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내 마음은 그랬다. 나의 도움으로 이 사람이 다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리처드와의 관계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나를 부른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리처드의 기대치 이상의 급작스런 변화가 병원에서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리처드의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아마도 자기를 돌보는 간호사에게 느끼는 감사의 감정이 아니고 이성으로써 사랑하게 된 거 같다는 말이었다. 전에 다른 병동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건 순수한 감사의 표현들이었기에 이번 일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매니저는 그건 건강한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가 아니므로 나에게 당분간 다른 환자를 돌볼 것을 제안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어느 날 휴게실에서 다른 환자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본 그쪽에는 혼자 앉은 리처드가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인사라도 하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순간 얼굴에 미소가 스치는 것을 봤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굳어진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다음 순간 의자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주먹 쥔 두 손에 쓰인 글자를 봤을 때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손에는 Hate(증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Kill(죽인다)이었다. 일부러 나에게 보이려고 올려놓고 있었던 거 같았다. 보고도 못 본 척 예나 다름없이 미소 지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다시 내 환자에게 돌아올 때 리처드의 얼굴을 스치는 슬픔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지만, 그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전해 듣는 리처드의 소식은 정말로 가슴 미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상태가 나를 만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더 폭력적이 되어서 안정제를 더 많이 투여해야한다는...... 가끔 복도에서 스치거나 휴게실에서 보는 리처드는 처음 봤을 때처럼 멍한 촛점 없는 표정에 약의 부작용으로 흘린 침 자욱까지 모든 것이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행복해하고 생기가 돌던 그의 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런 모습의 리처드를 보면서 얼마나 안타깝게 느꼈던지……

 

시간이 지나고 병원을 떠난 뒤 졸업 준비와 취업 준비로 바빠 점점 그를 잊어 가고 있었다. 가끔이라도 리처드가 생각 날 때는 완쾌되어 옛날의 촉망받던 그로 되돌아가기를 진심으로 빌었었는데, 오늘 걸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오랫만에 보는 리처드의 모습이 반갑다기보다는 너무나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시 또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그에게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던 건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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