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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 마세요

doggya 2010. 4. 30. 10:54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 마세요

 

 

 

 얼마 전부터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하여 아버지

가 점심밥을 먹여주신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아버지의 손이 자주 떨

리는 것을 ahr격하게 된다. 무릇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반증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로서는 참으로 민망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지난밤의 일만 해도 그렇다. 자다가 욕창 방지 차원에서 체위를 변

경하려고 아내를 몇 차례 불렀지만 곤히 잠든 때문인지 영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대신 불러봤지만 아버지조차도

응답이 없으셨다. 불현듯 두 사람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떡하나 싶어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처지와 맞물려 아버지와 아내의 존재가 그렇게 크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 가 없었다. 결국 잠에 취해 간신히 나오신 아버지가 나의

자세를 고쳐 주고 들어가셨지만······.

 

 사람이 나이 들면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나게 마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목 디스크로 고생하시는 것

도 모자라 무릎관절염까지 생겨 이중고를 겪고 계시는 것이다. 홀아

비 처지에 불구자식 수발 들어주는 것도 몸서리쳐지는 일인데 설상

가상으로 생겨난 병들은 아버지를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이리라. 이제

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송구함과 죄스러움에 눈도 제대로 맞

출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 시대의 노객들처럼 내 아버지도 혹독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6.25전쟁과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죽도록 고생만 하

다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폭삭 늙어버린 세대다. 말하자면 태생적

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이렇다 할 혜택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자식

들에게 희생만을 강요당하다가 결국 골병이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박복하여 아내 먼저 떠나보내고, 못난

자식 덕에 오늘날까지 남모르게 치르는 그 고초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내 아버지만큼 영영 늙지도 않고, 항상 곁에 계시리란

착각에서 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내 아버지는

노인성질환을 앓고 계시지만 그 특유의 강단으로 숱한 고비를 넘

어왔으니까 앞으로도 쭈욱 그러실 거라는 가당치도 않은 믿음. 그

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어머니를 졸지에 떠나보낸 뼈아픈 경험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기적 망상에서 허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한심하다 못해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

이 아니다. 한낱 공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솔직히 내게 한쪽 손만이

라도 쓸 수 있는 단 5분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스스로 지체 없이

사단을 내고 싶은 심정이다.

 

 밥 한 끼를 먹을 때마다 내 마음대로 반찬을 골라먹는 재미는 고사

하고, 늙고 병든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통해 제비새끼처럼 밥숟갈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나의 한심한 꼴이라니······.게다가 배설할 때

도 시종일관 아내와 아버지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도저히 처리할

수도 없는, 주야장창 식구들에게 빌붙어 사는 이 징그러운 축생(畜

生)의 삶을 언제쯤이나 끝낼 수 있을는지······.

 

 오늘따라 아버지의 손 떨림이 폭풍처럼 다가오고, 절룩거리는 다리

가 붕괴 직전의 마천루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순간 목이 메어 와서

"아버지, 저 그만 먹을게요."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아비가 먹여

주는 게 신통치 않아서 그러냐? 암말 말고 밥그릇에 남은 거라도

마저 다 먹어라. 그래야 내 속도 편치······." 아버지는 말꼬리를

흐리신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버지의 눈을 뵈니 살짝 물기가

비친다. 아차 싶어서  "알았어요. 남은 것 다 주세요." 하며 꾸역

꾸역 밥을 넘기는 내내 입안엔 모래가 서걱거리고, 식도엔 뜨거운

것이 자꾸 걸려서 화상을 입은 듯했다.

 

 아무쪼록 아버지가 건강하고 오래 사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흔히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 뜨는 것은 불효 중의 불효라고 말하지만

나의 경우엔 예외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버지의

여생이 결코 편치 못하리란 게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밥과

반찬을 에둘러 씹어 삼키면서 목구멍에선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마세요.' 란 말이 곧장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한낱 짐승 같은 제가 더 이상 불효를 저지르지 않도록 말입니다.

 

 

출처 : 굼벵이의 노래(황원교 산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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