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아랫목

doggya 2010. 9. 8. 08:39

 

 

아랫목

 

 

 

     추운 날입니다. 이렇게 날이 추울 때면 따끈

따끈한 아랫목 생각이 절로 납니다. 지금이야 온돌방이 아

니라서 아랫목과 윗목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만, 옛날에는 이거 무지

하게 따지면서 살았습니다.

 집안에서 제일 어른이 항상 아랫목을 차지하셨으며, 집에 온 손님

을 맞을 때 아랫목으로 앉으시라고 하면 최고의 대우였습니다. 아무

에게나 아랫목에 앉으라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방에서 밥을 먹거나 휴식을 할 때도 아랫목은 최고어른의 차지였

으며, 애들은 항상 윗목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어른과 아이들의 구분

이 확실하던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생활이 빈곤한 경우 단칸방에 살았으므로, 여유가 있어야 안방과

윗방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윗방에서는 아이들이 생활하였는데,

추운 겨울에 자고 일어나면 요강의 오줌이 얼었습니다. 잉크병이 얼

면서 깨지기도 했으니, 정말이지 방이 엄청 추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다들 방에다 요강을 놓고 살았습니다. 자다 잠이 깨면

윗목에 놓아둔 요강 뚜껑을 열고 오줌을 누면 되니 얼마나 편합니까.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불기운이 지나가는 방고래는 안방에서 윗방으로 이어집니다. 군불

을 때도 열기가 안방의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그리고 윗방의 아랫목

을 지나 윗목으로 차례대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윗방의 윗목

까지 뜨거운 기운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날이 추운 새벽녘에는 온기

가 다 식어서 몹시 추었습니다.

 방고래를 좋은 구들장으로 잘 만들면 방이 더 따뜻합니다. 이 잘

나있는 구들장은 아이들이 방안에서 뛰면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방안에서 뛰도록 내벼려두지 않았습니다. 쿵

쿵거리고 뛰놀면 혼을 내었던 것입니다.

 밥을 할 때마다 아궁이에 불을 땝니다만, 불을 많이 때면 아랫목은

뜨겁고 윗목은 차갑습니다. 춥다고 하여도 매일 군불을 때지는 못했

습니다. 땔 나무도 다 돈인데, 가난하던 그 시절에 무슨 돈이 많아서

불을 자주 때고 살겠습니까. 아침에 밥을 하느라 저절로 방이 따스해

지는 거 말고는, 저녁밥을 할 때나 불을 때는 것입니다.

 그 온기를 보존하기 위해 아랫목에 얇은 이불을 항상 깔아났으며,

그곳의 온기는 제법 오래 갔습니다. 아랫목의 주인이신 어른이 집에

계시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 아랫목을 서로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점심에 불을 때서 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시간과 연료

비를 절약하느라 아침에 해놓은 밥을 점심에 먹었던 것입니다. 잘 식

지 않는 놋쇠그릇에 밥을 퍼서 주발뚜껑을 닫은 다음, 아랫목의 이불

속에 묻어놓으면 밥이 식지 않아 점심때든 늦은 저녁이든 따스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날이 몹시 추운 어느 날, 동생들과 아랫목에 깔린 이불 안에 발을

집어넣고, 이불을 서로 더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힘이 좋은 내가 이불

의 끝을 잡고 힘껏 잡아당기자, 동생들이 이불의 끝을 놓쳤습니다. 내

가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이불 속에 들어있던 밥사발이 발

랑 넘어지면서 뚜껑이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발 안의 밥이 몽땅 빠져서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걸 어

쩝니까. 알몸이 된 밥을 급하게 손으로 주워서 사발 안에 도로 담았습

니다. 먼지가 묻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어쩝니까. 혼날 일 있습니까.

 방바닥과 이불 여기저기는 물론이고, 그것을 주워 담느라 내 손가

락까지 밥풀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방바닥과 이불 그리고 손에 달

라붙은 밥알을 하나하나 떼어 먹었더니 밥풀이 붙어 있던 그곳이 끈

적거리기는 했지만, 곧 말라붙어서 감쪽같았습니다.

 그날 점심때, 그 이불 속에 넣어두었던 그 밥이 상 위에 올려졌습니

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평시대로 점심을 맛있게 잡수셨지만,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와 동생들은 먼지가 묻어있

을 것이 틀림없는 그 밥을 물에 말아 먹었습니다. 깨끗하게 빨아서 먹

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방고래도, 아랫목도 없습니다. 각자의 방에 침대가 놓여있

으니 어른과 애가 앉는 자리를 구별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내가 어

른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출처 : 추억 속의 달챙이 숟가락(홍상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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