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잣죽과 하모니카

doggya 2010. 9. 17. 10:22

 

 

잣죽과 하모니카

 

 

 

 "미선아,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맛있는 잣죽 끓여서 곧 갈

테니까 말이야."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최 노인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잣죽을 끓이고 있기 때

문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맛있게 됐다. 먹고 싶지? 조금만 기다려.

이제 갈게."

 최 노인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며 맛있게 끓은 잣죽을 보온병

에 조심히 따랐다.

 "자, 다 됐다."

 최 노인은 한 손에 보온병을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직 날

이 세지 않아 앞이 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할아버지, 오늘도 가세요?"

어둠 속에서 낮익은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가야지. 우리 마누라 아침 줘야지."

 "하여간 대단하시네요. 몇 년째예요. 한 십 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그런가?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됐나? 허허. 자네는 어디 가나?"

 "예, 장에 배추 좀 내다 팔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그래, 수고하게. 나 먼저 감세."

 지금 최 노인은 아내에게 가는 길이다.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은 집에서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그곳에 간다. 큰 장마에 마을의 다리

가 끊어져도, 폭설이 내려서 길이 험해져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

고 그 강을 건너 아내에게 갔다.

 장터 입구에 도착할 무렵, 어느덧 날이 밝아 왔다. 국밥집 아줌

마가 최 노인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오늘도 정각 일곱 시에 우리 가게를 지

나가시네요."

 "그런가? 하하하."

 최 노인은 웃음으로 대신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가을

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아침 바람이 꽤 매서웠다. 최 노인은 외투

의 옷깃을 세우고 더더욱 발길을 재촉했다. 아무리 보온병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그만큼 잣죽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조

금이라도 따뜻한 잣죽을 아내에게 먹이고 싶었다.

 "미선아, 조금만 기다려."

 

 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최 노인은 자그마한

산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라 숨이 턱까

지 차지만, 최 노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산을 올랐다.

 "휴 ···.미선아, 나 왔다. 어젯밤에 잘 잤어?"

 최 노인은 보온병에서 잣죽을 뚜껑에 따라 아내의 산소 앞에 놓

았다.

 "미선아, 식기 전에 먹어."

 최 노인은 아내의 산소 옆에 앉은 후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

내 입에 갖다 댔다.

 "하모니카 소리가 참 듣기 좋다고 했지? 오늘은 새로운 곡을 연

주해 줄게. 그동안 틈틈이 연습했는데 잘될지 모르겠네."

 삐삐뿌뿌.

 삐삐뿌뿌.

 하모니카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정겹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했다. 최 노인은 하모니카를 죈 손이 시려 올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래그래. 잘 먹는다. 우리 미선이 잘 먹는다. 음, 이제 늦었으

니 가야겠네. 내일 또 올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 무섭다고 울지

말고, 알았지?"

 어느새 최 노인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래, 알았어. 내일은 더 맛있게 끓여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

지말고."

 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와 작별 인사를 했다. 아내를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자꾸만 멈춰졌다.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발

길을 재촉해 보지만 어느새 다시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 아래로 내려와서도 최 노인은 아내가 있는 데쯤을 한참 바라

보았다. 그 순간,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요,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고마워요. 평생 맛있는 잣죽을

끓여 주겠다는 약속, 하모니카를 불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마워요."

 최 노인은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집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를 만나고 돌아가는 최 노인의 뒷모습

이 그리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누구나 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수많은 약속을 합니다. 영원히 사랑

할게, 늘 너를 지켜줄게, 언제나 너의 편에 서 줄게, 세상에서 가장 널

돋보이게 할게 등등···.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약속은 점점 원

래의 빛을 잃어버리고 퇴색되고 맙니다. 당신은 지금 약속을 잘 지키

고 있습니까? 사랑은 말보다는 행동이고, 행동 이전에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약속을 영원히 잊지 마세요.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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