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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이야기

doggya 2010. 9. 20. 10:08

 

 

붕어빵 이야기

 

 

 

 노란색 책가방을 멘 남자 아이가 붕어빵 가게 앞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은 멈춰 섰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맛

있는 붕어빵 냄새가 아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이다.

 남자 아이는 해바라기처럼 방긋 웃으며 말했다.

 "붕어빵 아저씨, 천 원어치만 주세요."

 "그래, 알았다. 경오, 너 태권도 학원 다녀오는 길이니?"

 "예."

 "요즘 키가 더 큰 것 같구나."

 "콩나물을 많이 먹었거든요."

 곧이어 한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여자 아이도 가게에 왔다.

 "안녕하세요, 붕어빵 아저씨."

 "그래, 민희구나. 어디 갔다 오니?"

 "예, 시장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천 원어치 주세요."

 "그래, 알았다."

 은호가 놀이터 옆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붕어빵을 구운 지도 벌

써 칠 년이 되었다. 그래서 이 동네 아이들에 대해서는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었다. 어떤 아이가 까불이인지, 공부를 잘하는지, 게임

을 잘하는지, 축구를 잘하는지 등등.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먹기 좋게 잘 구워진 붕어빵이 완성되었

다. 은호는 아이들이 들기 좋게 봉투에 담았다.

 "자, 다 됐다. 이건 경오 거. 그리고 이건 민희 거. 아저씨가 한

마리씩 더 넣었다. 경오는 태권도 학원 잘 다니니까 한 마리 더!

그리고 민희는 심부름 잘하니까 한 마리 더!"

 "와, 고맙습니다. 붕어빵 아저씨."

 "고맙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보고 은호는 흐뭇

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은호는 아이들이 '봉아빵 아저씨'라고 불러 주는 것이 너

무나 행복했다. 은호는 한쪽 다리가 불편해서 어릴 적부터 친구들

이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모두 '절름발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붕

어빵 장사를 시작한 후로는 그의 별명이 '절름발이'에서 '붕어빵

아저씨'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붕어빵 아저씨'라고 불러 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어디에선가 싸우는 듯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바로 붕어빵 가게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왜 붕어빵을 안 판다는 거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손님,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다 팔면서 왜 나한테는 안 파는 거냐고? 이 사

람이 지금 사람 차별하네!"

 험상궂게 생긴 한 남자가 거칠게 은호에게 화냈다. 은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재료가 다 떨어져서 오늘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

음에 오세요. 그럼, 그때는 정말 잘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더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저기 만들어 놓은 붕어빵 다섯 개가 뻔히

보이는데. 앞사람한테는 팔고 왜 나한테는 안 판다는 거야!"

 "이건···.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오세요."

 남자는 성질이 났는지 침을 퉤 뱉었다.

 "참 더러워서! 두 번 다시 이 가게 오나 봐라!"

 은호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붕어빵을 서둘러 종이봉투에 넣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디 갈 데가 있어서···.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붕어빵을 드리겠습니다."

 은호는 절뚝절뚝거리며 어디론가 바삐 걸어갔다.

 "내 말이 아직 안 끝났는데 감히 도망을 가? 이런 절름발이가!"

 남자는 인중을 삐쭉 내밀며 은호를 뒤따라갔다. 그런데 은호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남자는 한참을 두리번거렷다. 그리고 육교 밑에 있는 은호를 발

견했다.

 "이봐!"

 남자는 씩씩대며 은호를 불렀다. 그러나 은호는 듣지 못한 모양

이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크게 부르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

이유는 은호가 쪼그려 앉은 채 거지 소년과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은화와 아이를 지켜보았다.

 은호가 종이봉투에서 붕어빵을 꺼내 거지 소년에게 붕어빵을

주고 있었다.

 "영식아, 오늘은 아저씨가 좀 늦었지? 자, 어서 먹어."

 "예, 붕어빵 아저씨."

 소년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영식아, 천천히 먹어. 그러다 입천장 다 데겠다."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오늘도 추웠지?"

 "괜찮아요.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늘은 어땠니?"

 "다행히 좋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은 사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기특하구나. 영식아,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붕어빵 아저씨도 하나 드셔 보세요."

 "하하. 난 괜찮다. 너나 많이 먹어."

 은호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이며 소년의 어깨를 따뜻하게 어

루만져 주었다.

 한참 동안 은호와 소년을 지켜보던 남자는 그제야 왜 은호가 붕

어빵을 팔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남자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남자는 발길을 돌

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내가 저 소년의 붕어빵을 뺏어 먹을 뻔했네."

 그날 밤은 꽤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마음만은 따뜻한 날이었다.

 

 남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만큼 값진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도움의

크기와는 상관없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더 많이 도와주면 되는 것이

고, 능력이 작다면 가진 만큼만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도움도 습관입니다.누군가를 도와준 사람만이 계속해서 도와줍니

다. 그 처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손을 잡

아 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 시

작하세요. 분명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고, 또한

당신의 내일도 값진 인생이 될 것입니다.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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