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건너 갈 징검다리
종민이는 몸이 너무 약했다. 여름날 아침이면 조회를 하다가 쓰러져
양호실로 실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체육 시간에 오래 달리기라
도 할라치면 꼴지는 언제나 종민이의 몫이었다. 종민이는 그런 자신
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부모님까지도 원망한 적이 있었다.
특히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체육 시간만 되면 종민
이의 자존심은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2학년 가을이었다. 종민이가 다니던 학교는 개교 50주년 기념
행사로 10킬로 단축 마라톤 경기가 있을 예정이었다. 학교를 출발
해 정해진 코스를 달린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경기였다.
종민이는 마라톤 행사 계획을 보며 무력감으로 고개 숙인 그 동
안의 자존심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라톤 경기
보름 전부터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하루 한 시간씩 마라튼 연습을
했다.
마라톤 경기가 있던 날, 날씨는 화창했다. 마라톤 출발선에 섰
을 때 같은 반 친구인 재혁이가 종민이의 등을 치며 말했다.
"소현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잘 뛰어. 저기봐."
소현이는 책상에 앉아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나눠줄 번호표를
쓰고 있었다. 소현이를 보자 종민이는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겠
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출발 신호와 함께 가을 햇살을 등뒤로 받
으며 100여 명의 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갔다.
한참을 달리다 경사진 언덕을 오를 때, 종민이는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1킬로도 채 뛰지 못하고 종민이
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현기증으로 눈앞이 아득해졌고 이마에
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속도를 조금씩 늦추
었다. 그러다 보니 뒤에 달리던 몇 명의 아이들까지 종민을 앞질
러 갔다. 이제 종민이는 꼴찌로 달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몇 번을
뒤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경기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열 걸음 정도를 그냥 걸
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종민이의 등뒤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종민이와 10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한 친구
가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종민이는 꼴찌
가 아니었다. 종민이는 다시 힘을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꼴찌는 종
민이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지만, 사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꼴찌를 향해 환호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 달린다는 안도감에 종민이는 9킬로를 달
렸고 경기는 종반에 이르렀다. 종민이는 그 먼 거리를 달려오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포기하지 않고 10킬로를 완주하는 것이 목
표였지만 그 날만큼은 꼴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교문을 들어설 때까지도 꼴찌는 종민이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종민이는
마침내 결승점에 도착했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뒤로 달려
들어올 친구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친구가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경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민이는 웬지
마음이 아팠다. 결국 꼴찌가 되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뛴 자신이 자
랑스러웠다.
그 날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종민이는 가족들에게 그 날의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경기에서 꼴찌로 들어왔지만, 스무 명 정도가 도중에 포기했으
니까 내가 꼴찌는 아냐."
"그것 봐라. 너보다 더 약한 애들이 얼마나 많니? 날씨도 더웠
는데 다들 얼마나 힘들었겠냐?"
종민이 엄마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내 뒤에 달려오던 친구가 거의 다 와서 경기를 포기하더
라구. 그 친구만 끝까지 뛰었어도 내가 꼴찌는 면할 수 있었는데 말
야. 하지만 엄마,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나도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
거야."
"······."
그 날 밤 종민이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때 안방 문틈 사이로 아버지의 가는 신음 소리가 들
려왔다. 아버지도 오늘 하루 꽤나 힘든 일이 있으셨나보다 하고 종
민은 생각했다. 종민의 아버지도 종민이처럼 몸이 많이 약했다.
그러나 다음날, 종민이는 아버지가 왜 밤새도록 끙끙 앓았는지
를 알게 되었다. 마라톤 경기가 있던 날, 자신의 뒤에서 꼴찌로 달렸
던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는 꼴찌로 달리며 종민이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꼴찌의 모습을 통해 종민이
를 격려했던 것이다.
종민이보다 더 약한 몸으로 아버지는 그 긴 거리를 달렸다. 하
지만 그가 흘린 땀은 종민이가 세상을 건너갈 징검다리가 되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무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
아. 조금은 어리석어야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거든······."
아버지가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행동과 말은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남아 종민이가 살아가면서 힘겨울 때마다 힘이 될 것이다.
출처 : 연탄길(이철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