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선생님의 눈물

doggya 2010. 10. 25. 09:11

 

 

선생님의 눈물

 

 

 

 중학생인 정태는 마음이 여리고 착했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정신 연령이 조금 떨어졌다. 나서야 할 때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는 이유로 정태는 중1 때부터 왕따가 되었다.

 새 학년이 되어서도 아이들 입소문만으로 정태는 또 다시 왕

따가 되고 말았다.

 한번은 정태의 카세트가 교실에서 분실되는 사고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분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에도 정태네 반 아이들을 한참 동안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정태가 분실한 카세트는 어처구니없게도 정태네 집에

있었다. 집에 두고 온 것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정태는 그와 유사한 실수를 한 번 더 했고, 그럴수록 정태에 대한

따돌림은 점점 심해져갔다.

 반 아이들 중 몇몇은 정태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정

태를 때리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들 여러 명이 정태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니네 엄마가 학교를 다녀간 뒤로, 우리가 담임한테 얼마나

당하는지 너도 알지?"

 "···."

 "니네 엄마 학교에 한 번만 더 오면 그때는 너 학교에 못 다니

게 될 줄 알아."

 "알았어. 엄마한테 말하지 않을게 제발 때리지 마."

 정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울먹거렸다. 그때 눈을 감고

한쪽에 서 있던 한 아이가 손사래를 치며 다가왔다.

 "때리면 흔적이 남을 테니까 때리지는 않을게. 근데 말야, 너

는 말로는 안 되는 거 알지? 자, 그럼 슬슬 시작한다."

 세 명의 아이들은 미리 약속한 듯 정태를 화장실 안으로 끌고

갔다. 정태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얼굴로 날아온 망

치 같은 주먹 때문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오늘은 세수시켜 줄게. 똥물로 말야."

 아이들은 풀이 선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정태를 화장실 변

기 앞에 꿇어 앉혔다. 그리고 수세식 변기통 안으로 정태 얼굴을

강제로 밀어 넣고는 힘껏 줄을 당겼다. 쏴아 하는 세찬 소리와 함

께 물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정태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런 얼굴로 일어섰

을 때 화장실 문을 나서며 한 아이가 말했다.

 "니네 엄마 학교에 오면 또 당할 줄 알아. 오늘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그땐 다섯 번 정도 세수시켜 줄게."

 아이들이 키득키득 비아냥거리며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때

체육 선생님이 화장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날 있었던 일들은

학생부로 낱낱이 보고됐다.

 다음 날 정태와 정태를 괴롭힌 아이들 모두가 학생부교실로 불

려갔다. 정태를 괴롭힌 아이들보다 더 애를 태운 건 담임 선생님

이었다.

 "주임 선생님,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정태가 괴롭힘을 당한

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제 탓입니다. 저를 용서한다 생각하시

고 아이들을 용서해 주세요."

 담임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정태를 괴롭힌 아이들은 간

신히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

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냈다.

 

 그날 이후 담임 선생님은 다른 때보다 일찍 학교에 출근했다.

그러고는 교무실에 가방을 놓자마자 고무장갑과 세제를 들고 곧

바로 화장실로 갔다. 선생님은 변기에 가루 세제를 뿌리고 얼룩

진 변기를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선생님이 닦아놓은 변

기는 눈처럼 하얗게 반짝거렸다.

 선생님이 한 달이 넘도록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발

소리를 죽이며 주뼛주뼛 다가왔다. 정태 얼굴을 화장실 변기 안

으로 밀어 넣은 바로 그 아이였다.

 "선생님, 죄송해요."

 "네 잘못이 아니다. 모두 잘못 가르친 내 탓이지. 정태는 여기

에 얼굴을 담갔는데, 고무장갑 낀 손으로 변기 닦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선생님은 고개 숙인 채 변기를 닦으며 말했다.

 "정태의 아픔을 생각해 본 적 있니?"

 그러곤 뒤에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너희들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어.

그러니 선생님이라도 이 더러운 변기를 깨끗하게 닦아놓아야지.

그래야 가엾은 정태가 또 다시 이 변기에 얼굴을 디밀어도 상처

를 덜 받을 테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이내 고개를 숙여버렸다. 고개

숙인 선생님 눈에 물빛이 어른거렸다.

 선생님을 지켜보는 아이의 눈가에도 눈물 한 방울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나팔꽃이 피어 있는 곳에서는 누가 따로 씨를 뿌리

지 않아도 그 이듬해에 나팔꽃이 피어난다. 사랑은 반

드시 사랑으로 다시 피어난다.

 

 

출처 : 연탄길3(이철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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