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희망이 내려다보이는 옥탑방

doggya 2010. 11. 8. 10:35

 

 

희망이 내려다보이는 옥탑 방

 

 

 

    가파른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우리 집이 보인다.그 집에서도 우리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산

다. 그렇다. 옥탑 방이다.

 여름에는 찜통이요 겨울에는 '냉방 완비'의 추운 곳이 되지만, 이

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라는 길로 가는 전환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집에서 나는 전화기 두 대에 팩스, 컴퓨터, 프린터만을 가

지고, 말로만 듣던 제조업과 온라인을 결합한 온 앤드 오프(on and

off) 체제의 인터넷 무역 사업을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선택한 이 사

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은 자본으로 시작하기에

적합했던지라 희망을 안고 첫발을 내딛었다.

 하루 종일 집 안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 검색으로 업체들을 찾아다니

고, 들어온 주문서에 답장을 하며, 남편의 옛날 거래처 목록이 담긴

빛 바랜 서류 뭉치들을 찾아 거래 제안서를 띄운다. 자본이 워낙 적어

서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는 힘들지만, '희망'이라는 버팀목이 있어

추진력과 인내력을 절대 잃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옥탑 방 안에서 컴퓨터를 상대로 씨름하다 보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고작 나가보는 게 시

장과 옥상이다. 그래서 가끔씩 나를 불러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목소

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디 아파? 얼굴이 누렇게 떴네. 집 안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려.

사는 게 힘들수록 밖으로 돌아다녀야지, 그럼 안 돼. 차 한잔 같이 하

자. 얼른 내려와."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게 된 집주인 언니의 목소리에선 진한 커피

향 같은 다정함이 느껴진다. 함께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또 집주인 언니와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 빠지다 보면, 꼭꼭 담아두었던 내 이야기가 솔솔 나와버린다.

 남편은 그날 기절해 버렸다. 외국에 수출했던 물품 대금이 오리무중

이 되고, 50만 달러어치 물품을 가져갔던 사람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

진 그날 말이다.

 "피눈물난다."는 말이 있다. 그게 '그냥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날, 남편 눈에서는 정말로 피가 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잔인한 현실에 맞닥뜨리

게 되었다. 우리는 우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은행과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모두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백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사

는 남의 손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남편은 밤마다 짐승처럼 울었다.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다"고 했

다. 만일 책임져야 할 처자식만 없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

을 사람이었다. 그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폭풍이 쓸고 간 폐허처럼,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

다. 한밤중에 건장한 청년들이 들이닥쳐 남편을 데리고 갔다. 남편은

날이 밝아서야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 돌아왔다.

 남편의 성화에 쫓긴 아이들과 나는, 근처 동생 집으로 피신했다. 그

때 남편은 혼자 남아서 모든 걸 몸으로 막아냈다.

 부도 이후, 남편이 겪어야 할 고통은 마치 순서를 정해놓은 것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깊은 상처를 치유할 여유도, 권리도 허용되지 않

았다.

 친정 식구들은 남편을 원망했다. "대책도 없이 회사만 키우다가 그

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한 현실처럼 얼음이 굵게 언 어느 추운 날, 우리는

지하 사글셋방으로 옮겨갔다. 짐들이 지하 방 안으로 들어가다 멈추었

고, 짐을 옮기던 사람들은 고개를 내두르다 집 밖에 짐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가버렸다. 지하 방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짐으로 들어

차서 숨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간신히 밥만 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부엌에는 환풍기가

없었다. 지하이다 보니 가스 불을 사용할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

러웠다. 화장실 배수구를 통해 쥐가 드나들고 방 안으로 물까지 새어

들어왔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자, 방 안 어딘가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기술자랑 같이 와서 보더니 "원인을 모르겠다"면서 방구석에

커다란 구멍만 뚫어놓고 갔다. 그 구멍에는 옹달샘처럼 물이 고여서

날마다 몇 바가지씩 퍼내야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두 달이 넘도록 물이 샘솟는 방, 그곳에서 먹고 자

고 하는 생활도 견딜 수 있었다. 남편만 잘 버텨주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억울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

워했다. 남편도 인간이었다.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

해 술의 힘을 빌려 억지로 잊고 살았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면 물

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처럼 언제나 조마조마하고 가슴이 아팠다.

 얼마 뒤 석 달이 밀린 은행 연체 이자가 500만 원이 넘었고, 사글셋

방 보즘금마저 압류하겠다는 통고가 날아들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

 어느 날 내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왔다. 그리고 누워 있는 내 머

리맡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왔는데, 이제부터 올라

가야지."

 친구의 말은 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희망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노력하는 만큼 미래는 우리에게 텃밭을 내어줄 것이다.

 새 일을 찾아 여기저기 쫓아다니던 남편은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고,

나는 미용 기술을 배우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항상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 난 이 집에 사는 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아. 그리고 옛날보다

생활하기도 편해. 왠지 알아? 집 안에서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잖

아. 봐! 방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화장실 있지, 부엌 있지. 이렇게 편

한데 엄만 이게 싫어?"

 내가 미안해할 때마다 아이들은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지하

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친구를 전혀 데려오지 않는 큰아이를 보면 마

음이 저렸다.

 지하 방에 살면서도 마음만은 편했던 우리는, 결국 방에서 솟아나는

물을 막지 못한 채 장마철을 맞았다. 서둘러 긴급 대피처를 구했고,

지금의 옥탑 방으로 이사했다. 남편은 지하 방에서 옥탑 방까지 전전

한 것이 미안하고 안쓰러웠던지 술까지 끊었다.

 이제 더 이상 방 안에서 물이 새는 일도, 쥐가 나타나는 일도 없었

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뿐만이 아

니었다. 옥탑 방으로 이사해서 좋은 점은 또 얼마나 많은지······.빨

랫줄에 빨래를 반나절만 걸어두어도 눈부신 햇살에 보송보송 기분 좋

게 마른다. 그런 옷가지들을 걷다 보면, 마치 바람결에 퍼지는 박하

향을 맡는 것처럼 상쾌해진다.

  "아! 행복하다, 진짜로."

 두 팔 벌려 하늘 저 멀리 퍼진 흰 구름을 향해 웃어보기도 한다.

 나에게 이 옥탑 방에서 시작한 사업이 있어 정말 행복하다. 이제 밝

은 미래가 우리 가족에게도 팔을 벌리고 있기에.

 가끔씩 남편의 일이 난관에 부딪혀 함께 괴로워하다가도 '그래도 행

복해, 행복해, 행복해' 하고 수없이 되뇌다 보면 그 괴로운 마음은 어

디론가 사라진다. 그 대신 행복이 내 손을 잡아주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면, 온 세상에 행복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때로 무너지려는 희망을

목숨처럼 붙들고 살다 보니, 큰 불행에는 마음을 넓히고 조그만 행복

에는 엿가락처럼 길게 늘려 만끽하는 노하우를 터득했나 보다.

 내 이야기를 듣던 집주인 언니는 "많은 걸 배운다"면서 "더 좋은 방

을 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비교적 풍요롭던 지난날 만남을 후회한 적도 있었던 우리 부부. 그

러나 가난해진 지금은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지금의

가난한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또 아이들

에게 "힘든 세월을 잘 견뎌주고 있어 고맙다"고 말한다. 함께 겪어야

할 어려움이 아직 많이 남아 있겠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아 마음이 풍족하다.

 남편과 나는 가끔 서로에게 다짐한다.

 "행여 우리 형편이 좋아지더라도 가난한 지금의 마음을 절대 잊지

말고 살자."

 가난한 남편과 가난한 부모를 둔 내 아이들, 그리고 우리에게 사무

실과 살림 공간을 동시에 준 이 작은 옥탑 방. 이 모든 것을 사랑하

는 나는,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문지방을 넘어 나만

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