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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약속

doggya 2010. 11. 11. 08:5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약속

 

 

 

                   나는야 맞벌이 주부. 아침마다 네

살 난 딸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직장에 나간다. 처음에는 헤어

지기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회사에

서도 아이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혀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좀더 열심히 일하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버텨왔다.

 "얘야, 애가 이상해. 열이 팔팔 끓는다."

 어느 날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나는 허둥지둥 집으

로 달려가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었다. 급성 기관지염에 폐렴이 겹

쳤다고 했다.

 아이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이를 돌봤지만,

노인의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자꾸 열이 나서 울어대는 아이를 업고

안고 달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내가 교대로

일찍 퇴근해서 아이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

 고통에 힘겨워하는 아이와 함께 많이도 울었다. 정말이지, 내 몸이

아픈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의사 표현도 잘 못하는 아이가 아파

서 저렇게 신음하는데, 그래서 저렇게 애타게 엄마를 찾는데 그 곁에

항상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친정 엄마가 결국 몸살에 걸리고야 말았

다. 그래서 회사에 사정을 전하고 오전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오

후에는 남편이 병원에 와서 교대를 해주었다.

 그런데 다음날이 문제였다. 병원에서는 "몇 가지 검사를 더 해야 하

니까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고민했다. 병원에는 내가 있어야겠지만, 회사 일이 문

제였다. 가뜩이나 바쁜데 자꾸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더

구나 전셋집을 장만할 때 사장님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빛까지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우리 사장님께 한번 부탁해 볼게."

 남편은 즉시 자기 회사의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사장님에

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쓰디

쓴 웃음을 지었다. 전화를 끊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장님께서 며칠 휴가를 준다네. 그러니까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출근해."

 ······. 그때 나는 왜 몰랐을까.

 입원한 지 여드레째 되던 날, 딸아이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날

남편은 우리를 보고 약속했다.

 "연말에 선물 사줄게."

 남편은 딸에게는 예쁜 인형을, 내게는 구두를 선물해 주겠다면서 자

상하게 웃었다. 아이와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친정에 맡겨두고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이상한 점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매일 새벽녘에나 들어왔다. 게다가 옷은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돌

아오기가 무섭게 바로 누워 잠이 들었다. 아침마다 남편에게 "무슨 일

이냐"고 물었지만 "응, 응. ······그런 일이 있어"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다.

 하루는 잠을 자면서 끊임없이 발을 긁는 남편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젖히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남편의 발을 본 내

눈에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힘든 날품팔이 일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남편의 두 발은 동상에 걸렸는지 붉게 변한 채 통통

부어 있었다. 그 언 발이 따뜻한 방에 누우니 풀리면서 간지러왔던 것

이다. 그래서 저렇게 계속 긁어댔던 것을······.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연고를 사다 발라주었다.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남편이 깰까봐 조심조심 닦은 뒤 연고를 바르는데,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렸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남편이나 아이가 들을지 몰라. 이불

을 뒤집어쓰고 통곡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다음날 남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을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알은척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남편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저······ × × × 씨 좀 부탁합니다."

 그러자 들려오는 아가씨의 목소리.

 "퇴사하셨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비로소 확인하고 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욱더 가슴 아파할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

었다. 우리 사정을 이해 못해주신 그 회사 사장님이 너무나 야속하고

미웠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그해의 마지막 날, 남편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도 오늘 송년회 하자. 퇴근하면 곧바로 와."

 모든 일을 끝낸 후 대충 정리하고 퇴근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

에 들렀다.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소주 한 병, 딸애가 좋아하는

만두랑 콜라, 마지막으로 조그만 케이크를 샀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

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쉬지도 않고 마구 뛰었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곧 상을 물리고 케이크에 초를 몇 개 꽂고 불을 붙였다. 딸아이는 얼

마나 좋은지 깡충깡충 뛰었다. 남편은 그런 아이의 모습을 흐믓한 눈

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와 남편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작은 행복만으로도 충분해.'

 조용히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일어나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쇼핑백을 들고 왔다. 그가 꺼내는 물건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곰돌이 인형이었다. 인형을 받은 아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

며 아빠의 뺨에 뽀뽀를 했다. 하지만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남편이

준 선물의 포장지를 뜯지 못했다.

 "그랬구나. 남편은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던 거구나."

 남편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또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준

남편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선물 준비 못해서 미안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몰라. 그리고 우리는 부부니까 이제부터 힘든 일 있으면 같이 고민

하고, 정말 힘들 때는 같이 할 테니까······."

 남편이 내 말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남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

르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생각해 보자, 응? 당신에게는 우리가 있고, 또

우리에게는 당신이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해.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당신 건강이나 신경 써."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두 팔을 뻗어 내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었다. 눈물 흘리는 우리 부부를 보고 아이가

따라 울면서 물었다.

 "엄마 아빠,어디 아파? 응? 아프면 안 돼."

 내가 대답했다.

 "아냐. 지금 엄마랑 아빠는 너무 행복해서 그래. 행복해서 울기도

하는 거야."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