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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

doggya 2010. 11. 14. 09:44

 

 

행복한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

 

 

 

          '살아간다는 것'은 왜 이다지도 많은

행사의 연속인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줄줄

이 이어진다. 태어나면 백일 잔치, 돌 잔치, 유치원 및 졸업, 그

이후 입학과 졸업의 반복, 그리고 결혼식, 아이를 낳고 나면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반복······.

 그렇게 수많은 행사를 거쳤다. 이제 내 나이 '5학년 2반', 남편은

'5학년 6반'이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고 온갖 행사를 치르

는 중이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색다른 행사를 치르겠다면서 난리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내가 계속 반대했기 때문이다.

나 없이는 절대 치를 수 없는 행사이니, 남편은 마음이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남편이 준비하려는 행사는 이른바 '장기 기증 서약'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분리되잖아. 그럼 육신은 나무만도 못한 거

야.그런 육신을 내주는 게 뭐가 아까워?"

 그러더니, 남편은 얼마 전에 기어코 병원에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

는 내 코앞에 서류를 내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에 서명을 하라고. 이게 말이야, 간단히 끝난다니까."

 장기 기증 증서였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더니, 남편은 천연

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신, 그거 알아? 눈에 있는 각막 말야. 조물주가 이걸 참 튼튼하

게 만들었대. 그래서 아흔 살 노인이 기증한 각막을 이식받아도 수십

년 동안 쓸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놈의 각막이란 게 항상

부족하다는 거지."

 "그런데 왜 하필 당신이에요? 다른 사람도 많은데. 그리고 당신은

눈도 별로 좋지 않은데, 그런 각막을 갖다가 어디에 쓰겠어요?"

 "모르는 소리! 내 몸에서 쓸 만한 게 한둘이겠어? 그리고, 정 쓸 게

없으면 연구 실습 재료로 사용해도 되잖아 의대생들이 실습할 수 있

는 몸이 그렇게 부족해서 난리라는데."

 남편의 말을 듣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저이는 이 세상에 무슨 빚을 졌기에 저렇게 뭔가를 남겨주지 못해

서 안달인 것일까?'

 남편은 계속 나를 다그쳤다. 결국, 나는 눈물을 훔치며 서명을 해주

었다.

 장기 기증 증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호자(보증인) 두 명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저녁 무렵 아들이 돌아오자 남편은 기다렸다

는 듯이 아이에게도 서류를 들이밀었다. 아들 역시 선뜻 서명을 못하

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남편의 설득에 밀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서명

날인을 했다.

 남편의 장기 기증 증서에 서명한 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벌써 세월이 흘러서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됐구나. 이제 인생 정리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나이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였다.

 '저이는 왜 저렇게 장기 기증을 고집하는 거지? 그래, 태어나면 언젠

가는 다시 돌아간다는 게 정해진 이치이기는 하지.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

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저 사람은 삶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려는 거야. 살아

서도 천국 같은 생활을 하고 죽어서도 행복하겠다는 거지. 남은 사람

들에게 자신이 것을 나눠주어서 죽어서도 기쁨을 느끼고 싶은 것일

게야.'

 무뚝뚝한 남편은 내게 조리 있는 설명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에게 말했다.

 "나, 당신처럼 장기 기증 증서를 쓸래요. 이제 나도 준비를 해야죠."

 남편이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