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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남편의 살 빼기 대작전

doggya 2010. 11. 17. 10:01

 

 

'만삭' 남편의 살 빼기 대작전

 

 

 

 따르릉~.

 "여보세요?"

 "어, 난데. 뭐 필요한 거 없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봐. 지금 퇴

근하는 길인데 가는 길에 사 가지고 갈게."

 남편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퇴근길에 전화를 해서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본다. 너무나 자상한 사람이다. 다섯 살짜리 딸아이가 "엄

마, 쉬 마려워? 하면 황급히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갈 정도로. 그런 그

와 희로애락을 같이한 지도 벌써 8년이 되어간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근한 눈빛과 선량한

마음에 반해 '이 사람이다' 싶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일사천리였다.

 "첫눈에 반하면 실망이 크다"고들 한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기대를

무너뜨린 적이 없었다. 자상한 아빠에 다정한 남편으로 8년 동안을 살

아왔다.

 헌데, 완벽한 사람이란 역시 없는 모양이다. 원수 같

은 삼겹살이 하필이면 남편의 배로 몰려드는 바람에 뚱보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매일 마주 보며

살아온 우리 부부는 그걸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두 달 전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엄마, 있잖아. 아빠 뱃속에는 아기가 들어 있지. 그렇지?"

 천진난만한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딸의 말에

모두들 박장대소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한참 황당해하자, 일곱 살짜리 아들이 대신 대답을 했다.

 "바보야, 아기는 여자만 낳을 수 있는 거야. 남자는 아기를 낳는 게

아니라고. 그것도 모르냐?"

 딸아이가 지지 않고 맞받았다.

 "그럼 아빠 배는 왜 이렇게 커. 꼭 풍선 같잖아."

 남편은 그제서야 눈을 껌벅거리면서 끼어들었다.

 "내 배가 애 가진 것처럼 그렇게 나왔나?"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물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으면서 대꾸

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7, 8개월도 아니고 만삭이네요, 만삭. 해산

예정일은 언제랍니까?"

 남편은 일어서서 전신 거울에 자기 몸을 비춰보면서 배를 만지작거

렸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많이 안 나왔는데······."

 그 말에 내가 쐐기를 박았다.

 "자기는 뱃살만 빠지면 완벽한 몸매인데, 아깝다 아까워."

 하긴 남편이 뚱보라는 소리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시

어머니도 남편을 볼 때마다 "살 좀 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신혼 때만 해도 나날아 살찌는 남편을 보면서 "얘야, 네

가 잘 먹이나 보구나. 참 보기 좋다"면서 흐믓해하셨다. 하지만 요즘

은 "살쪄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면서 남편을 볼 때마다 핀잔을 주곤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난 물만 먹어도 살찌는 걸 어떻게 해"

하면서 괜한 핑계를 둘러대기 일쑤였다. 그러던 남편이 다섯 살짜리

딸애의 기습 한 방에 넉 다운된 것이었다.

 남편은 그날로 '뱃살과의 전쟁'을 엄숙하게 선포했다. 남편은 심하

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음날 남편은 새벽 5시에 일어나더니 산에 다녀왔다. 그러고는 반

찬을 가려 먹기 시작했는데, 고기보다 생선과 채소를 주로 먹었다. 나

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라다 말겠지 뭐. 작심삼일이라는데, 게다가 살 빼기가 그렇게 쉬

운 줄 알아?'

 하지만 남편의 이번 결심은 진짜였다. 매일같이 산에 다니면서 운동

을 하고, 술자리 약속도 피하는 것 같았다. 바늘 가는데 실 안 가랴.

그래서 나도 큰맘 먹고 남편의 결심에 동참했다.

 하얀 쌀밥은 현미로 교체했고, 계란 프라이는 반숙으로 먹으며, 기

름기 있는 음식은 무조건 피하면서 제철 야채로 식단을 짰다. TV를

보면서 먹던 과자 나부랭이를 치웠고, 배가 고플 때면 당근이나 토마

토 같은 야채를 먹도록 했다. 저녁 먹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게 2시간

씩 배드민턴을 쳤고, 휴일이면 가족끼리 근처 산에 올랐다.

 남편의 다이어트가 지속된 데는 나만의 비결도 한몫을 했다. 남자들

은 조금 단순한 면이 있지 않은가. 옆에서 무조건 칭찬해 주고, 살살

구슬리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다그치고 싶을 때마다 꾹 눌러 참고

칭찬을 해보라. 효과가 200배는 더 좋다.

 나는 남편의 몸무게가 줄어든 걸 확인할 때마다 "멋있다. 영화배우

해도 되겠네. 당신 다시 봤어"하면서 최고급 아부를 아끼지 않고 선

사했다. 남자들은 정말 칭찬에 약했다.

 남편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 남자 연예인의 사진을 턱 하니 벽에

붙여놓았다. 날렵한 몸매가 드러난 사진이었다. 그러더니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그 사진을 한 번 보고는 물을 한 잔씩 마시는 것이었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남편이 그렇게 욕구를 억누르는 걸 볼 때

마다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의 건강을 위해, 아니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남편은 어느새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아

빠'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결과는 몰론, 대성공이었다.

 177센티미터의 키에 90킬로그램의 거구였던 남편은 84킬로그램으로

몸무게를 줄였다. 나도 덩달아 살이 빠졌다. 키 160센티미터에 50킬

로그램이었는데 48킬로그램으로 줄어들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남편을

따라한 지 2주 만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내다니.

 '에게~, 겨우 그거야?' 하고 생각하신다면, 살 한번 빼보라. 1킬로

그램 빼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쁘게 한 것은 무작정 굶으면서 살을 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음식을 조절하면서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데 성공

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승리는 더욱더 값졌다.

 남편은 요즘 "살 좀 빼고 나니까 몸이 가벼워져서 기분이 정말 좋

다"고 말한다. 바깥일에도 자신감이 붙는 모양이다. 그러나 남편에게

는 아직도 가혹한 시련이 많이 남아 있다. 목표치인 77킬로그램을 달

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7킬로그램을 더 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

는 남편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하리라 믿는다.

 남편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에도 꽉 끼던 양복바지가 헐거워진 걸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오늘은 모처럼 쇼핑을 해볼까 한다. 남

편에게 입힐 새 바지를 사러 말이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