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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장수 친구의 행복 메시지

doggya 2010. 11. 16. 09:51

 

 

생선 장수 친구의 행복 메시지

 

 

 

 "한번······드셔······보세요."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 한 마디 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몇 사람이 다가왔지만, 집어먹기만 하고 사 가지는 않았다. 얄

밉기만 했다.

 나는 친구 소개로 어묵 회사 판촉 요원 일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어묵을 끓여 시식 판매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사

실, 그 일을 처음 시작한 나는, 정작 어묵 파는 일보다 다른 걱정이

앞섰다.

 '이러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만저만 망신스러운 게 아닐 수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식 코너를 지켰다. 이 백화점은 동

네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여기까지

물건을 사러 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 이제 며칠간만 바짝 일을 하

면 큰애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를 사줄 수 있

다는 기대감으로 애써 그런 불길한 생각을 털어냈다.

 하지만 그 일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잠깐 주어지는 식사시간 빼

고는 하루 종일 잠시도 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묵을 끓이면서 손

님들에게 구매를 권유하는 일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회 생활

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숙맥이 그런일을 맡았으니 어떻겠는가.

 저녁 무렵이 되어가니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용기도 좀 생겼다. 어

묵을 권하면서 요령껏 제품을 설명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저 먼발치에서 여고 동

창 둘이서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수다를 떨면서 쇼핑 카트

를 밀던 그 애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앗! 큰일이다. 이걸 어쩌나······.'

 너무나 당황해 안절부절못해하던 나는 그만 화장실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자꾸 그 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눈에도

부유해 보였다. 둘다 시집을 잘 갔는지 족히 몇 백만 원은 되어 보

이는 밍크 코트와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있었다.

 '저 애들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내 고교 시절 별명은 '수학 귀신'이었다. 수학을 잘해 교내는 물론

교외 수학경시대회까지 나가 입상을 하고 해서 친구들에세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 친구들과 비교해 보고 있으니 내 처지가 한심하기만 했다. 자꾸

만 눈물이 났다. 사는 게 대체 뭐란 말이냐!

 한참을 울다가 시식 코너로 돌아오보니 어묵 국물이 다 졸아 있었다.

때마침 찾아온 어묵 회사 직원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돈 버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편이 가져다 주는

월급을 "겨우 요거?" 하면서 우습게 여겼던 게 후회가 되었다. 남편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큰소리 치곤 했다.

 "그까짓 돈. 내가 맘만 먹으면 한 번에 몇 뭉치는 벌 수 있어! 몇

푼 안 되는 월급 받아오면서 생색은 무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오로지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골목길을 들어서는 찰나 트

럭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갈치요, 갈치. 갈치가 싸요!"

 한 아주머니가 트럭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저 여자 처지도 나처럼 안됐네. 그래, 갈치라도 한 마리 팔아주자.'

 이렇게 생각하고 다가가서 갈치를 살펴보았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너 혹시 경숙이 아니니?"

 갑자기 갈치 아주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미 해가 저문 뒤라 얼핏 봤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들여다보니까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그 애는 학교 때 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성적

도 좋았고 미모도 받쳐줘서 주변 학교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갈치 장수가

된 모습에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자신이 왜 갈치 장수로 나서

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 주었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천연

덕스럽게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어떡하니? 먹고는 살아야겠고······.애들도 가르쳐야 하니까······.뭐

어떻게든 다 살게 되더라고. 하하하. 나 잘 어울리지? 하하하."

 "그럼, 얘! 사람 사는데 할 일 못할 일이 어디 있니? 도둑질만 빼

고."

 나는 그렇게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속으로는 창피했다. 백화점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도 도둑질하다가 들키기라도 한 양 도망쳤던 나, 갈

치 장사를 하면서도 구김 없이 살아가는 저 친구······.

 학생회장에 미스코리아 뺨 치는 외모를 지녔던 저 애도 저렇게 자신

있게 생선 장사를 하는데, 그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나는 이게 뭐란

말인가. 겨우 판촉 행사 하루 하고서는 세상 다 산 것처럼 서글퍼 하

다니. 그렇게 그녀는 내게 스승이 되어주었다.

 나는 요즘도 가끔 판촉 행사에 나가곤 한다. 그럴 때면 동네 아주머

니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당당하게 말한다.

 "와서 물건 많이 팔아줘서 내 체면 좀 세워줘요. 응?"

 그 친구가 너무나 고맙다.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신 있게 살아가는 방법 말이다.

 행복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 같은 요행

은 아닌 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노력해서 무언가를 쌓아가는 동안 느

낄 수 있는 감정,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