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호랑이 선생님
부부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
황 가운데 하나가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 가르칠 때'라고 한다. 그런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던 남
편이 짜증을 부리다가 자기들끼 대판 싸움이 붙는 건 흔한 일이다.
싸우다가 도로에 차를 버리고 제각각 가버리는 부부를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그 양상이 일반적인 경우와 180도 다르다. 그
역할이 바뀌어 내가 아내에게 운전 교습을 받았던 것이다.
아내는 대형 트럭 기사 출신의 장인에게 영향을 받아서인지 결혼 전
에 1종 대형면허는 물론 특수면허까지 가지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말
씀대로 '탱크 빼고는 다 몰 수 있는' 무서운 여자였던 것이다. 운전도
카레이서 뺨치게 잘했다. 대학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로 택시를 몰기도
했고, 장인어른이 편찮으실 때는 직접 화물차를 몰고 전국을 누비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런 아내를 만난 나는, 모질게도 운전과는 전혀 인연이 없
는 사람이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엿섯 번이나 쳤지만, 모두 낙방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 전의 내 면허 도전기를 풀어놓자면 이렇다(부디
웃지 마시길).
첫 번째 도전 : 코를 골면서 지하철 종착역까지 가는 바람에 시험장에도
못 가봤다.
두 번째 도전 : 필기 시험에서 미끄러져 자동차는 만져보지도 못했다.
세 번째 도전 : 필기 시험은 60점으로 턱걸이했지만, 그 여세를 몰아 기
세 등등 실기에 도전했다가 결국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를 혼동하는 바람에 다른 차에 박치기하는 사고를 내서
수리비를 물었다.
네 번째 도전 : 간신히 코스 시험을 통과했지만, 주행 시험에서 낙방.
다섯 번째 도전 : 시동을 몇 번씩이나 꺼먹고 낙방.
여섯 번째 도전 : 간만에 주행을 완주했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너무
빨리 들어왔다고 불합격 처리.
더 이상 회사에 "운전면허 시험 보러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할 엄
두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 안에서는 나에 대한 이런 우스겟소리
까지 떠돌았다.
"저 친구, 여섯 번이나 운전면허 시험을 봤는데 고작 코스 시험 하
나 통과했다네. 그런 머리로 어떻게 우리 회사에 들어왔지? 낙하산 아
냐?"
결국 나는 아예 면허 시험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중교통만 고집하면
서 머릿속에서 '면허'라는 글자를 지우고 살았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
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첫날 밤. 아뿔싸! 아내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우리, 차 언제 사요?"
"응? 그냥 좀 있다가 사지 뭐."
무면허에 얽힌 나의 사연을 알 리 없던 아내는 돈이 아까워서 차를
사지 않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며칠 후 아내는 "아빠가 새 차를 장만하셨다"면서 장인의 헌 차를
몰고 왔다. 차를 보는 순간, 나는 속으로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굳이 운전할 필요가 없던 연애 시절에 '1종 면허소지자'라고 공갈을
친 터였다. 퇴근도 하기 전에 회사로 달려와 내 손에 자동차 열쇠를
쥐어준 아내에게 딱히 변명할 게 없었다. 그래서 또 머리를 쥐어짜 변
명거리를 만들어냈다.
"어? 나 운전하면 안 되는데. 음주 운전 때문에 면허가 취소됐어."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말았다. 집들이에 놀러
온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너, 아직도 면허 시험 보러 갈 때, '지하철 여관' 이용하냐? 지하
철 7호선 의자 쿠션이 그렇게 좋다던데. 이번엔 거기서 한번 자봐라."
아내 모르게 그 친구에게 눈짓 발짓을 다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친
구들이 돌아간 다음, 아내가 따지기 시작했다.
"왜 거짓말했어요? 여섯 번이나 떨어졌으면 운전 학원이며 시험장에
갖다 바친 돈이 엄청나겠네요. 그 돈만 다 모았어도 차 한 대는 거뜬
히 뽑았을 거 아니에요?"
그야말로 융단폭격이었다. 더 이상 뭐라고 변명할 것도 없었다.
아내는 그 다음날, 나를 끌고 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나는 찍 소리
도 못하고 다시 응시표를 손에 들어야 했다.
그 순간부터 고난의 길이 열렸다. 아내의 감시 아래 필기 시험을 준
비했다. 아내가 내준 모의 시험이 적중했는지 필기는 2점 차로 통과
했다. 코스 시험도 무난하게 합격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주행 시
험이 문제였다. 학원에 등록하려고 했더니 아내가 가로막았다.
"최고의 강사가 여기 있는데, 왜 돈 버리고 시간 버려요? 그동안 거
짓말했죠? 딱 걸렸어요."
그날 아내 몰래 학원비로 쓰려던 비상금까지 몽땅 자진 납부해야 했
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주행 연습에 들어갔다.
헌데 남편이든 아내이든, 부부 사이에선 운전 교습 방법이 항상 같
은 모양이다. 내 예비군복 바지를 입고 나온 아내는 내가 실수하거나
헤맬 때마다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
"운전대 제대로 잡고! 전방 주시하고!"
그래도 우리끼리 있을 때는 사정이 나았다. 아내의 고함소리에 놀란
다른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한마디씩 하는 걸 들을 때면, 쥐구멍
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자리가 바뀐 거 아니에요?"
"어라, 남자 망신 다 시키고 있네."
어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차를 발길질
하면서 아내와 한바탕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아내에게서 "멍청이, 바보, 천치"
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이면 또 안심하고
아내와 함께 주행 연습을 나갔다. 그때마다 아내는 "화 안 내고 차분
하게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100미터도 못 가서 고함지르기 일
쑤였다.
하지만 결국,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탄생했다. 아내의 갖은 학대(?)
를 견뎌내면서 독기를 품고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임한 결과, 마의 벽
이었던 주행 시험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첫 도전 이후 5년
만의 일이었다.
합격 판정을 받자, 달려오는 아내를 안아 높이 올려주었다.
"운전치 가르치느라 고생 많았어."
"내 덕분인 줄 아니 다행이네요. 사랑하니까 그렇게 소리도 치고 그
런 거예요. 알죠?"
아내는 기뻐하는 내게 앙증맞게 윙크를 해주었다. 사랑해서 그랬다
는데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5년 동안 일곱 번 도전한 끝에 간신히 국가고시에 합격했으니, 이젠
평생 안전 운전하면서 잘 살아야지. 이번 명절에는 내가 직접 운전해
서 보무도 당당하게 처가로 입성해야겠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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