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날개 달린 작업복

doggya 2010. 11. 19. 18:51

 

 

날개 달린 작업복

 

 

 

                                   경기가 어렵다는 요즘, 사장 남

편과 함께 출근하는 마누라 사원이 많을 것이다. 남편과 나 역시 조그

마한 공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단조 가공 공장인데, 상세하게 말하

자면 끝이 없겠다. 그냥 무거운 쇳덩이 그리고 기름과 하루 종일 싸우

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려나. 이른바 '3D업종'인 것이다.

 사실 젊은 사람들이 3D업종에 취업하는 걸 기피하기 때문에, 사장

마누라인 나까지 공장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기름때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간다.

 나는 원래 이 공장의 경리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장부 정리는 10분

안에 끝내고, 현장 일을 돕는다.

 '사람은 옷이 날개'라는데, 이상하게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이 내게

는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거래처 사장님이 방문했다가 놀라기도 하지

만, 나는 이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떳떳하기만 하다. 처

음에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직원들이 슬슬 피하기도 했

다. 그러나 이제는 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소리친다.

 "아줌마!"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아줌마 여기 있어요. 항상 대기중입닌다~. 뭘 도와드려요?"

 그러면 직원들은 이렇게 농담을 받는다.

 "아휴, 정말 못 말리는 아줌마라니까."

 남편이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가

족같이 단출하다. 직원들 각자 맡은 기계가 있는데, 내 도움이 필요해

서 불러줄 때면 정말 행복하다.

 토요일에는 공장 일을 쉬고 집안일을 했는데, 요즘에는 토요일에도

호출당하기 일쑤다. 남편이 전화를 걸어 "직원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뾰루퉁하게 이 말을 덧붙인다.

 "너, 인기 캡이다."

 남편의 말에 질투가 섞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가끔 남편과 직원들이 땀 흘리면서 고생하는 걸 보면 왜 이렇게 힘

들게 살아야 하나' 하며 마음 아플 때도 있다. 요즘 우리 같은 업종에

서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기술자'라고 하면 '자기 식구 밥은 안

굶긴다'고 해서 꽤 인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 번잡한 시

내를 가보면, 한창 땀 흘리면서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 유흥업소 홍보를 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부족한 일손들이 여

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들이야 돈이 있으니 중국 진

출도 하지만, 우리 같은 영세 기업들은 직원 구하기가 힘들어 줄줄이

문을 닫는 현실이다.

 TV 드라마에서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등장시킬

것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많이 소개시켜 주었

으면 좋겠다. 드라마에서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멋진 일만 하는 것처

럼 비춰주니, 젊은이들이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것 아닌가!

 공장에 다니면 좋은 점이 많다. 땀 흘려 일을 하니 밥이 맛있다. 날

씬한 몸매 만들려고 굳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다. 다리에 힘이 생

긴다. 옷 값이나 신발 값을 아낄 수 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면 탄성이 절로 난다.

 '나는 뭘 믿고 이렇게 멋진 걸까.'

 종일 같이 지내다 보면 남편과 다툴 때도 있다. 회사 일과 가정 일

때문에 숱하게 싸우기도 했다.그래서 우리 둘은 작은 규칙을 세웠다.

 퇴근 시간이면 남편과 나는 자동차에 타서 이렇게 한다. 남편은 자

동차 기어에 손을 올려놓고, 나는 그 손 위에 내 손을 살며서 포갠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공장 일은 끝! 우리는 부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애들 이야기, 저녁 반찬 이야기 등을 나

누면서 함께 웃는다.

 다음은 남편과 함께 정한 생활 신조다.

 

 

첫째, 항상 웃자(남편 휴대전화를 열면 이 문구가 뜬다).

둘째, 직원들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남편은 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말

        하자면 '일을 물어 오는 새'이다).

셋째, 사장이라고 재지 말자.

넷째, 두 번 다시 되돌아보지 말자(빚 보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었다).

다섯째, 회사는 회사, 집은 집이다.

 

 

 우리는 싸우기 싫어서 매일매일 서로 다짐을 한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