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센트의 기적 만들기
내 조카 동석이는 아홉 살. 언
니는 "동석이 병이 나으면 신겨야지" 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신발을 사
모았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그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다.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한 그 신발들은 언니네 신발장에 그대로 쌓여만 있을
뿐이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막내야······."
언니는 나를 한 번 부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헉헉 우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너무도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는 것 같
았다.
"왜 그래, 언니? 무슨 일이야?"
"동석이가 근육병이란다. 어쩌면 좋아. 흑흑."
근육병. 아직까지 원인도 모르고 약도 없다는 희귀병. 왜 하필이면
조카에게 그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언니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아닐 거야. 뭔가 잘못됐을 거야.'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형부와 언니가 그 이후로 흘린 눈물은 바
다가 되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동석이는 아홉 살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사방으로 알아보았
지만, 아이를 받아줄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동석이 몸에 근육병 증상이 나타난 것은 돌 무렵이었다. 지금은 증
상이 악화되어 겨우 앉아 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
고, 글씨 쓰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정도.
하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속이 꽉 찬 아이이다. 한글이며 숫자, 심지
어 컴퓨터까지 저 혼자 배워서 한다. 동석이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정기 모임에 나가는데, 같이하는 근육병 환자들 중에서도 가장 중증이
라고 한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동석이는 천재"라고 했다.
꽤 오래전, 형부가 동석이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우리 동석이, 다리 잘라서 근육병 낫는다면 다리 자를래?"
아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빠 그러면 나중에 병이 다 나은 뒤에 걸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
니까 그냥 이대로 있을래요."
형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식구들은 동
석이 몰래 고개를 돌리고 숨죽여 울어야만 했다.
동석이는 조숙했다.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자, 엄마에게 이
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언제나 밖에 나가서 놀수 있어? 나에게 그런 날이 오
긴 할까?"
억장이 무너진 언니가 아무 말도 못하자 아이가 화를 냈다.
"왜 나만 이렇게 태어난 거야. 나도 학교 가고 싶고 친구들하고 놀
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언니가 눈물 흘리는 걸 보자, 이내 태도를 바꿨다.
"엄마,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나 아무렇지도 않아. 엄마랑 하
루 종일 같이 있어서 더 좋은걸."
여섯 살 된 내 아들은 곧잘 기도를 한다.
"하느님, 우리 동석이 형아 꼭 나아서 걷게 해주시고,
나랑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함께 하게 해주세요."
두 아이는 서로를 끔찍하게도 아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언니
와 나는 눈물을 흘린다.
왜 이 아이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똑같이 축복받고 세상에 태
어났는데, 왜 신발 신고 땅 한번 밟아볼 수 없는 거지?
'병이 나으면 신겨야겠다'고 산 신발들이 흙 하나 묻지 않은 채 언
니네 신발장에 쌓여가는 걸 보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이모인 내 마
음이 이럴진대 언니 마음은 오죽할까.
기적이란 게 단 1퍼센트라도 있다면······.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사랑방 > 햇살님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를 만난 건 행운이야 (0) | 2010.12.04 |
---|---|
칼국수와 실장갑 (0) | 2010.12.03 |
처음 만난 두 천사 (0) | 2010.12.01 |
상처 기우는 아이, 희망 만드는 엄마 (0) | 2010.11.30 |
공주 납치 사건의 전말 (0) | 2010.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