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사랑
벚꽃이 활짝 핀 봄, 여자는 멋진 남자를 남편으로 맞았다. 남자도
안개꽃과 같은 예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들은 아주 행복하게 살
았고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꿈같이 흘렀다.
그런 그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아주 작은 촛불 때문이었다. 갑자
기 전기불이 나가자 아내는 촛불을 켰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 촛불
은 커튼으로 옮겨 붙고, 다시 이불로, 가구로 번져 조그만 집을 송두리
째 삼켜버린 것이다.
그 불로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목숨
이라도 건졌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이제 아내는
평생을 암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아내는 하루에도 여러 번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마다 남편은 눈물을 삼키며 묵
묵히 아내 곁을 지켜주었다. 남편의 사랑은 더욱 지극해졌다. 잠시도
아내 곁을 떠나지 않고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어느 정도 생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
이 처음보다 열 배 백 배로 커졌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이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도 많은 대
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새 이마에는 주름이 하나 둘 생
기고 머리카락도 반백이 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흰머리를 보며 놀리
곤 했다.
"당신 머리에 벌써 하얀 눈이 내려 진짜 할머니가 됐구려."
아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 모습은 어떤지 참 궁금하군요. 딱 한 번만이라도 당신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젊었을 때는 정말 잘 생겼었는데······.
아직도 그 얼굴 여전한 거죠?"
남편은 아내의 물음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눈을 이식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살날
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주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
었다.
그런데 그들을 덮쳤던 불행의 끝자락이 모두 물러간 것이 아니었
다.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남편은 크게 다쳤고 생명까
지 위독했다. 아내에게는 청천 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빛을 잃은 사
람에게서 지팡이마저 빼앗아가다니 하느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불이 꺼져가던 남편은 아내에게 줄 마지막 선물을 계획했
다. 바로 자신의 각막을 이식시켜 주는 것이었다. 아주 낡고 약한 눈
이지만, 또한 세상을 희미하게 보여줄 눈이지만, 아내가 마지막 세상
을 살아가는 데에는 큰 불편함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각막을 이
식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던 남편이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고, 제정신이 들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그녀는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때 그녀 앞으로 편
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할 것이 있다오. 지금보다
훨씬 전에 당신에게 이 세상을 찾아줄 기회가 한 번 있었지.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이었는데 당신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그런데 나는 덜컥 겁이 나지 뭐요. 당신은 나의 마지막 모습을 생
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 아주 젊었을 때의 얼굴을.
하지만 여보! 나는 당신이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오.
그때 당신은 눈을 잃었지만 나는 얼굴을 잃었기 때문이요. 웃지
도 못할 만큼 근육은 서로 엉겨 붙고 찌그러졌지. 도저히 이 모습
을 당신에게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거요. 또 우리의 넉넉하
지 않은 생활과 힘겨운 세상과도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지. 부
디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오.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옛 기억을 간직하고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오. 그리고 네 마지막
선물로 환한 세상을 보구려.
당신의 남편이
출처 : 행복 쪼꼬렛(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54가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