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봉우리
지혜의 산이 있었다.
이 산에 사는 새들에게는 한 살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섣달 시험에 합격하면 한 살이 얹어지나 실패하면 한 살이 줄어든다.
우두머리는 곧 나이가 가장 많은 새인데
이 산에는 늙었어도 시험 때문에 나이가 적은 새들이 수두룩하다.
근래에는 지니고 있는 나이가 줄어둘까 봐
시험을 피하는 새들이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하얀 점박이 독수리만은 줄기차게 시험을 치렀다.
어떤 섣달에는 나이가 늘기도 하였지만 어떤 섣달에는 오히려 줄기도 하였다.
그는 요령 부족으로 우두머리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의 도전만큼은 아무도 따르지 못하였다.
이번 섣달에도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시험장에 섰다.
시험관이 물었다.
"가장 좋은 마취제는?"
"잠입니다."
"아니다. 일이다. 일에 몰두하면 잡념이 없어지는 거야."
시험관이 두 번째 문제를 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틀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여야 한다."
시험관이 세 번째 문제를 냈다.
"고통받는 친구가 생겼을 때는?"
"위로하여야 합니다."
"그런 반응은 못된 인간들도 할 줄 안다."
하얀 점박이 독수리가 물었다.
"그러면 정답은 무엇입니까?"
"반응보다는 행동이어야 하지. 그곳으로 달려가서 네 것을 나누어야 해."
"지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군요. 앎과 삶이 같아야······."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이후부터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섣달이 되어도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큰 눈이 내린 뒤 어느 날이었다. 소리개가 하늘 높이 떠서 보니
바보 새들이 모여 사는 빈 산봉우리에 선 채로 죽은 독수리가 있었다.
바로 그 하얀 점박이 독수리였다.
출처 : 향기 자욱(정채봉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