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좋았던 기억에는 항상 좋은 마무리가 있다

doggya 2011. 4. 15. 07:35

좋았던 기억에는 항상 좋은 마무리가 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화가가 용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점 하나로 그려넣었더니 그 용이 홀연히 구

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이다. 화룡점정은 어떤 일

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작은 점 하나로 비유해서 알려

주고 있다.

 

 

 이러한 화룡점정의 그림처럼 도자기를 구울 때도 그러하다. 망

치를 들고 방금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쓱 한번 훑어보고는 하나

하나 깨어버리는 장인들이 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왜 저렇게까

지 해야 할까 싶은데, 장인은 도자기의 빛깔, 티끌 같은 결점 하나

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깨어져 수북이 쌓인 미완성의 물건 사이에 선택된 하나

의 도자기가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도 장인의 손 안에만 있을

때에는 진정한 마무리가 아니라고 한다. 도자기의 진짜 아름다움

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애용될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명품으로 태어난 도자기가 장인의 손을 떠나 누군가는 술병으

로, 누군가에겐 향수병으로, 혹은 누군가에겐 관상용으로 각자의

쓰임에 따라 주인이 그 물건에 애정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명품으

로서 완성된다. 막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젖을 빨고 있을

때 진정한 생명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국보급의 청자나 백자는 아니지만, 우리네 부엌에서 흔히

보이는 사기그릇이 있다. 이 사기그릇을 잘 닦아두던 우리네 할머

니들도 살림 마무리를 참으로 살뜰하게 잘 하셨던 분들이라는 생

각이 든다.

 

 

 어릴 적 나의 외할머니가 보여주셨던 꼼꼼한 살림살이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된다. 별것 아닌 살림

이라도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모습, 그래서 조금은 느리

게 보이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게 살림을 하던 외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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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내가 세수하고 나서 건성으로 물기를 닦고 있을 때, 당신이

수건을 다시 들어 손자의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주시면서 "우리아

가 얼굴이 막 씻어낸 사발처럼 반짝반짝 하는구나" 하시며 볼을 살

짝 잡아주셨다. 할머니의 작은 손길 하나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기억을 닦아주고 있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그런 작은 기억들이 흩

어져 있는 모래사장처럼 내게 남아 있다.

 

 

 고생고생해서 어떤 일을 다 마쳤는데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그

것을 망친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무엇이든 좋았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거기에는 항상 좋은 마무리

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장인들은 마감을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다. 두 손으로 꼼꼼하게 마감을 잘한 수공품을 만드는 마음으로,

당신 또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마음가짐을 다잡아 보라.

상사에게 혼나는 일도, 사소한 일로 망신을 당하는 일도 조금은 줄

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매일매일의 마무리가 잘 이루어진다면 나

중에 닥칠 큰일의 마무리도 수월하게 맺을 수 있다.

 

 

토요일 오후의 사무실은 한가했다. 격주제로 직원들이 돌아

가면서 휴가를 쓰기 때문에 사무실이 듬성듬성 비었고, 마침 중요

한 일이 잘 마무리가 된 즈음이라 그녀도 점심 후에 여유롭게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어느 시기에는 이런 여유를 꿈

도 꾸지 못한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하면 눈가가 더워지곤 한다.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목욕시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남편과 같이 욕탕 바닥

에 넘어졌을 때······ 수년간 의식만 겨우 살아 있어 역시 괴로워하

는 남편의 곁에서 그의 일상적인 모든 것을 처리해 주어야 하는 생

활들. 그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심

히 일해야 했던 그녀도 가끔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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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것이 너무나 힘에 겨워, 어떤 날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회의실의 한 귀퉁이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자

리에 앉아 있던 후배는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곤 잠

시 뒤 가까이 다가와서, '언니 울지 마. 괜찮아 질 거야'와 같은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울고 있는 그녀를 하염없이 지켜만 보았다. 울

고 있던 중이었지만 그녀 또한 후배가 자기 곁에서 지그시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오늘 남편에게 그랬다. 이 인간아, 왜 죽지도 않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어쩌다 남편에게 하고 난 후에, 그녀

에게 그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면 그때서야 '언니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하면서 같이 속으로 울어주었던 후배.

 자신이 왜 갑자기 지난 그 시절을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을

까 의아했는데, 우연의 일치였을까. 바로 그 후배가 근처에 있다면

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지금 나 언니한테 잠깐 들러도 돼?"

 정말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반색을 했고, 둘은 한가한 사무

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앞에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후배는

사려 깊은 여성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보고, 경솔한 행동

을 하지 않는 그녀의 후배는, 현재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비주공예

의 전문가가 되었다.

 

 

 후배의 작품에는 남다른 것이 있었는데,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

리는 세밀한 손길을 그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

은 입을 모아 말했다.

 후배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런 후배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져 그

녀는 아파트 거실의 장식장에 후배의 아름다운 구슬공예 작품을

모아놓았다. 후배가 가끔 하나둘 보내주기도 하고,그녀가 직접 매

장에 가서 사오곤 했던 구슬목걸이, 팔찌, 작은 인형 등등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또 눈시울이 붉어졌

다. 애써 안경 너머로 눈물을 감추면서, 그녀는 한 사람이 한 시절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후배는 작은 종이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며칠 후면 언니의 생일인데 본인이 외국에 나갈 일이 있어 이렇게

미리 전해주러 왔다는 것이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십자가였

다. 고통과 평화의 상징을 그녀는 정성껏 만들어 직접 선배의 목에

걸어주었다. 따뜻한 후배의 손길이 그녀의 목덜미에 순간 닿자 마

음마저 깊이 데워지는 듯했다.

 

 

 선배로서 수년간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는데, 자신을 이렇게 기

억해주고 지금까지 애틋한 정을 나눠주는 후배가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이 후배가 있음으로 해서 그녀는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짧은 문장에도 마침표를 찍어야 되고, 세수를 하고 나선 수

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듯이 우리는 매일매일 어떤 마무리를 하면서

살고 있다. 마무리 없이 하루를 마감하다 보면 내일 아침을 맞이하

는 것 또한 불안하게 시작된다.

 

 

출처 : 착한 책 (원재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