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손에 보물지도가 새겨져 있다
'햇살에 비치는 해저에 보물이 있으리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보물을 찾는 순간에 감격에 겨워 한 말이
다. 보물지도는 약속을 지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에서 만난
귀인에게 건네받은 보물 지도 한 장. 햇살이 비치는 해저는 이제부
터 펼쳐질 그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동안 어둡고 고통스러
웠던 암흑과 같은 생에 환하게 비치는 햇살. 그 햇살을 담고 있던
보물지도로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에드몽, 즉 몬테크리
스토 백작은 그 보물로 무얼 사고 싶으냐고 하인이 묻자 이렇게 단
오하게 한 단어로 대답한다.
"복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샤토 디프 감옥에 갇힌
에드몽은 오로지 복수만을 생각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낸
다. 그리고 14년 만에 그 기회를 준 것이 한 장의 보물지도였다. 그
에게 보물지도가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이 하나둘
씩 펼쳐진다.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Alexandre Dumas의《몬테크리스
토 백작》은 소설 작품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모델이 실존했다는 것
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보물을 찾는 사람들이 세계 역사 속에
서는 꽤 많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세상의 동과 서를 연결하던
실크로드를 통해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동양의 보물을 찾고자
하는 서양의 보물사냥꾼들이 몰려들었다. 이 실크로드에서 최대의
보물은 둔황 문서고인데, 영국의 고고학자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은 정부의 이임을 받아 1907년 실크로드를 탐사하면서
둔황의 천불동을 발견하게 된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를 전하던 승려들에게 있어 둔황은 침범
할 수 없는 성지였다. 366년에 승려 러쭌이 사암 암벽에 1,600미터
의 동굴을 뚫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천장화나 벽화가 그려진 다른
작은 석굴들도 탄생했다. 이 동굴을 찾아 헤매었던 스타인은 17번
석굴에서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비밀의 문서고를 발견했다. 그곳에
는 4만 5,000종의 불교문서, 그리고 직물과 그림들이 보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인은 불교 미술품과 고문서 1만 2,000여 점을 영국으로 반
출했다. 명백한 약탈 행위였다. 불교의 고문서들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현장스님의 제자로 위장했고 그곳의 책임자인 중국인 승려들
을 현혹시켜, 고문서의 값으로 단돈 130파운드만을 주었다.
이렇게 영국인이 한 번 가져가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 및 일본인
들이 나타나서 그 보물들을 쓸어가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문화재들이 엄청나게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밖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황금 유물, 유럽 왕가의 다
이아몬드였던 '피렌체 다이아몬드',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숨겨
놓았다는 금괴 등 세상에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보물들이 많이 숨
겨져 있다. 그리고 그 보물의 위치를 그려놓은 보물지도 역시 대단
한 보물이 되어버렸다.
간혹 예외도 있겠지만, 보물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보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눈
이 멀어진 까닭이다. 마치 맨눈으로 태양을 보는 모습과도 같다.
세상에는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욕심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리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되는 법이다.
'보물지도가 내 손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럼
당장 자신의 손바닥을 보라. 손바닥을 펴보면 지도 같은 손금이 있
다. 그 손금을 내 인생의 보물지도로 보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귀한 보물이 내 손바닥 안에 다 있는데, 정작 그 보물지도의
주인인 내가 그것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보물지도를
쥐어주어도 그 보물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보석 같은 하루가 눈 앞에서 반짝이고 있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이 보물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과 보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동네 야산의
작은 동굴에 숨겨놓은 구슬치기의 구슬, 작은 인형 같은 것, 지금
보면 하찮은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점점 자라
면서 취향에 따라 다른 보물들을 찾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가방이
나 옷, 혹은 책을 보물처럼 간직하는 친구들도 있다. 성인이 되
어서부터는 실제 보석을 보물로 간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
서 제일 가는 보물은 역시 돈이야'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매주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복권에 당첨되면 화려한 인생이 보장될까? 당연히 그러할 것이
라고 짐작하기 쉽다. 이러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미
국의 어떤 기자가 엄청난 금액으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10년 후
를 취재한 적이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당첨금으로 자신
이 다니던 회사를 아예 사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는 직
속상관인 부장의 잔소리를 더이상 듣지 않고, 대신 자기 마음대로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년 후에 기자가 만난 그 주인공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
다. 몸은 병들었고 회사는 도산 직전이었다.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그는, 복권으로 받은 당첨금만큼의 부채를
지고 완전히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다. 그에게 천문학적인 당첨금
은 바로 그만큼의 독이었다.
그렇다. 보물은 바로 내 작은 손바닥 안에 있다. 친구들과 따뜻
하게 먹는 밥 한 끼가 나의 건강을 지키는 보물이고, 매달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집세가 있다면 집 역시도 나의 보물이다. 서로 이
야기가 통하는 연인이 사랑의 보물이고, 그네를 타면서 환하게 웃
는 아이들의 얼굴이 일상의 보물일 것이다. 그리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그대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이다.
그는 대학 시간강사로 출강한 지 7년째이다. 이제나 저제나
전임강사가 될 기회만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점점 어려워지는 살림살이 때문에 작년부터는 밤 시간에
대리운전을 하면서 그야말로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런 자신이 좋다는,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 얼굴을 점
점 더 보기가 미안했다.
대학 개교기념일이었던 날, 그는 동네에서 가까운 공원을 찾아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공원의 한 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눈
에 띄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은 안대를 쓰고 지팡이를 짚으면
서 정해진 코스를 돌고 있었다. 어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초등학
생들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서 주변을 둘러보
니, 장애인 체험을 하고 있는 행사였다.
그때 행사에 참가한 무리 속에서 그는 2년 전에 전임강사가 된
친구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정해
진 코스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아는 척을 하려다가 그만 얼굴을 돌
려버렸다. 그런데 코스를 다 돌고 안대를 벗고 있던 친구가 손을
번쩍 들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간단하
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 나서 친구는 그에게 안대와 지팡이를 건네며 한번 돌아
보라고 권유했다. 엉겁결에 안대와 지팡이를 받아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또 뭔 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그래, 앞이 안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 같은 놈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거겠지. 그
래, 설교 한번 들어주마."
그는 먼저 교수가 된 친구를 보자 고까운 마음이 들면서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 역시 아직 전임이 되지 못한 그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는 코스를 돌면서 여기 저기 부딪치고 넘어지기까지 했다. 심
술 맞은 마음으로 서두르다가 나온 행동들이었다. 그는 창피한 마
음으로 옆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옆에 앉아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 나 이번에 사표 냈어. 교수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그리고 평소에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아담한
커피 하우스를 하기로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웬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그에게 친구는 말했다.
"그리고 내 자리에 널 추천했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아침에 담당 교수님에게 전화해 보니까 아마도 이번
학기에 네가 될 것 같아. 미리 축하한다. 아까 전화했는데 왜 받지
않았어? 비밀 사항이긴 하지만, 친구끼리니까 미리 알려주는 거
야."
뜻밖의 말에 입만 벌리고 있던 내게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어둠만 보지 말고 희망을 봐라. 조금 전에 너도 체험했
듯이 어둠 속에 있으면 답답하잖아······ 뭔가 본다는 건, 아마도 어
둠 속에서도 희망으로 보는 게 아닐까 싶다. 힘내라."
바닷물이 파란 것은 다른 모든 색은 받아들이고 그 색을 거
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 그 소
중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그 소중함으로 당신을 볼 것이다.
출처 : 착한 책(원재훈 지음)
'사랑방 > 햇살님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았던 기억에는 항상 좋은 마무리가 있다 (0) | 2011.04.15 |
---|---|
나는 타인 앞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0) | 2011.04.14 |
날개만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아니야 (0) | 2011.04.11 |
우리의 인생은 낙타의 일생 (0) | 2011.04.10 |
무엇이 그대를 빛나게 하는가 (0) | 2011.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