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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 사는 인생

doggya 2011. 4. 16. 09:32

참으로 잘 사는 인생

 

 

 우리 옛 이야기 중에 구두쇠로 유명한 자린고비 이야기가 있다.

굴비를 반찬으로 먹기가 너무 아까워서 천정에 매달아놓고 쳐다본

채 그냥 맨밥만 먹었다는 자린고비 말이다. 남에게 너무 퍼주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인색하게 사는 것도 주위의 이웃이나 친구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록 각박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우리의 자린고비를 훨씬 능가하는 구두쇠들은 세상 곳곳에 존

재했고, 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18세기에 영국 런던

에서 살았던 대니얼 댄서라는 사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그의 가문 자체가 대대로 구두쇠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

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구두쇠 정신은 대니얼

댄서의 시대에 이르러 가장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돈이 아까워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는

데, 그의 누나 역시 마찬가지로 구두쇠였다. 댄서는 런던 북쪽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수입이 있는 부자였는데도 하

루에 작은 고기 한 조각으로 한 끼 식사만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웃에서 맛있는 것 좀 먹으라면서 송어 요리를 선물했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송어 요리가 얼어 있자 그것을 녹이는 연료비가 아까

워 요리가 녹을 때까지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이불도 없이 통 자루 속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고,

옷은 누더기와 밀집다발이 전부였다. 그의 구두쇠 노릇은 거기에

서 그치지 않았다. 가끔 런던으로 나들이를 가면 사람들이 그를 거

지로 알고 동전을 던져주었는데, 그는 이런 경우에도 아무런 모멸

감도 없이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신념으로 모두

챙겨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누이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그의 구두

쇠 정신은 여지없이 발휘되고야 만다. 그의 누이가 1766년에 병으

로 죽어가고 있을 때 그는 의사를 부를 돈이 끝내 아까웠나 보다.

"나는 누이를 하늘로 부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의사를 부르며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사람은 어느 시

기에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결국 의사 한 번 부르지 않은

채 누나를 떠나보낸다.

 

 

 그렇다면 대니얼 댄서는 그렇게 모은 돈을 과연 어디에 숨겨두

었을까. 그는 그간 모아둔 어마어마한 돈을 농장의 거름더미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장소에 숨겨놓기를 좋아했고, 강도가 들까 봐

거기에는 반드시 자신이 개발한 장애물을 설치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도 결국 세상을 떠날 때는 홀로일

수밖에 없다. 1794년 댄서가 세상을 떠나자 달리 가족이 없었던

그의 막대한 유산은 그와 누나를 돌보아주었던 템페스트 부인에게

상속이 되었다. 하지만 그 구두쇠는 죽어서도 자신의 재산을 가져

가고 싶었는지, 템페스트 부인은 그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댄서를 간호하는 동안 병을 얻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부인도 운명하고 만다.

 

 

 대니얼 댄서의 놀라운 구두쇠 인생. 이 정도면 거의 철학자 수준

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인생을 어느 잣대로 잴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우리 모두가 낭비를 하고 있고, 그러한

우리들의 생을 불쌍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어느 날, 옆집 할머니가 집에서 당신이 직접 만든 된장을 가

지고 왔다. 아직까지 남들에게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녀는 할

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경제적인 관념이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 아버지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결혼을 해서도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든든한 남편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온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경제적인 고민 한번 없이 지내온

그 할머니는, 작게는 집 안의 간장 된장에서부터 자신이 아끼는 옷

까지 주위에 있는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런데 은행을 다녔던 남편을 닮아서인지 할머니의 아들은 경

제적인 관념이 무척 투철했다. 그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니까 십수 년 전의 일일 것이다. 어느 날 아들이 기르던 앵무새

가 알을 품어 새끼를 낳았다. 집 안에서 앵무새 두 마리를 기르기

가 적당하지 않다고 여긴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앵무새를 주

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성큼 그러자고 동의를 했다. 한데, 돈을 받고 주

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었다. 아니, 가까운 이웃끼리 무슨 돈을 주

고받느냐고 아들에게 말하려다가, 엄마는 일단 아들의 생각을 더

듣고 싶어서 '그래, 얼마나 받았으면 좋겠니?' 하고 물었다. 아들

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150원은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꼭 150원을 받으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물었더니, 그것으

로 다른 물건을 사려는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

기를,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야지 앵무새

를 귀하게 여기고 아낀다는 주석도 다는 것이 아닌가.

 

 

 제법 의젓하게 말하는 아들의 폼을 보자, 갑자기 자신이 아이 같

고, 그 아들이 어른 같은 생각이 들어 당황했다고 이 할머니는 회

상했다. 아들은 야무지고 똑똑하게 잘 자라,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

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녀는 가끔 '나는 참 잘 산 인생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들이 결혼을 하는 7월이 지나면 아들을 분가시키고, 이제부터는

그녀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받았던 모든 사랑을 이제는 도움의 손길을 바

라고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는 그녀가 어려서 아버지에게 받은 것, 결혼해

서는 남편에게서 받은 것들을 모조리 돌려주고 싶었다는 그녀, 그

래서 아들은 아들의 삶을 살게 하고 자신은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할머니의 남편은 몇 해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일평생 편하게만 살아온 그 할머니를 알고 있는 다른 사람

들은, 인생의 황혼기를 살고 있는 그녀가 이제 잘나가는 아들의 그

늘에서 살 것이라고 짐작들을 했겠지만, 이 할머니는 벌써 정리할

것은 다 정리해놓고 인생 후반부를 살 준비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앵무새를 키운다고 한다. 그리고 앵무새

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그것은 자신이 그간 받았던 감사에 대한

표시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 할머니를 보면서 참 운이 좋은 인생을 잘사시는 분이라는 생

각이 들었고, 그 사랑도 결국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닐

까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럴 만한 행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마음 씀씀이가 그녀의 삶을 마치 '운이 좋은 삶'

으로 보이게 했을 뿐이다.

 

 

 

자신에게는 구두쇠가 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기부자들을

우리는 진정한 부자라고 부른다. 있는 재산을 다 내주었는데도 부

자가 되는 사람들은, 나누지 않고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가난

한 사람으로 본다.

  

출처 : 착한 책(윤재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