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지우고, 다듬고······
삶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예술의 전당에 밀레의 <만종>이 전시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내
에서는 처음 전시되는 것이어서 언론들은 이미 크게 주목했고, 수
많은 인파가 찾아와 세계적인 명화를 감상했다.
모든 그림은 원본으로 보아야 그 깊이와 느낌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이 세계적인 작품을 사본으로밖에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
게는 오랜만에 만나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전시회에는 밀레 이외에도 19세기 유럽 화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가들의 그림이 여러 점 전시되었다. 고갱과 고흐의 작품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국보로 여기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과 같은 불멸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래도 역시 제일 주
목을 받았던 것은 밀레의 <만종>이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이 걸작은 처음에는 굶주림으로 죽은 아이의 작은 관을 앞에 두
고 두 부부가 슬픔에 겨워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전해진
다. 어두워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자식을 잃은 부부의 슬픔을 표현
하는 것이 그림의 주제였던 것이다. 그때 들려오는 종소리가 바로
작품의 제목이 되는 만종이었다.
그런데 밀레의 친구가 어느 날 우연히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이
다. 그림을 보고나서 친구는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림이 너무 슬프니, 관이 놓인 자리에 다른 것을 그려 넣는 것
이 어떨까?"
친구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밀레는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
러다가 결국 그 자리에 한 끼니의 식사, 즉 생명 연장의 상징이 되
는 '감자를 넣은 바구니'로 고쳐서 그렸다. 이렇게 해서 지금 우리
가 아는 <만종>이 탄생하게 된다.
죽음과 생명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다시 태어난 이 작품은, 하루
의 일과를 끝내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두 부부의 희망적인 모습
으로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만종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희망의 종소리 바로 그것이다.
인생을 흔히 한 폭의 그림에 비유하곤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화가 앞에 펼쳐진 흰 캔버스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오늘 어떤 그
림을 그리고 있는가. 맘에 드는 그림이 그려져 가고 있는가. 아니
면 다시 처음의 흰 캔버스로 돌려놓고 싶은가.
수정할 시간은 많이 있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 친한 친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라.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이 친구의 눈
에는 보일 수도 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 교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무척 좋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
다.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 있어 뛰어난 실력자이기도 하지
만, 동시에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 그리고 항상 편안한 웃음을 머
금은 얼굴······.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는 데 있어 최고로 치는 것
은 무엇보다도 인사를 참 잘한다는 점이었다. 박 교수의 인사를 받
아보면 도저히 '인사치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마음속에
서 우러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배들이 자신의 새로운 저서라도 보내주면 솔직히 바빠서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그는 꼭 이렇게 격려의 말을 하곤 한다.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고생 많았어."
한번은 곁에 있던 친구가 "너, 그 책 읽지 않았잖아?"라고 묻자,
그는 허허 웃으면서 "그럼 읽지 않았으니 다음에 볼게, 그럴까? 그
럼 정말 어색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그였다. 혹은 음악 공연을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전날의 밤샘작업으로 공연 내내 객석
에 앉아 졸고 있었는데도, 막상 공연 관계자를 만나면 그는 한결 같
이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곁에 있던 그의 친구는 박 교수의 그런 모습이 조금은 위선적으
로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대충 지나치
면 될 텐데, 왜 저렇게 과장된 말투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인지 도
무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박 교수에게는 과거에 겪었던 한 사연이 지금의 그의 모
습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한때 박 교수는 지금과는 정반대인, 그
야말로 칼날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사에 시니컬하고 표정 또
한 냉정해서 얼음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항상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고, 아는 사람 앞을 지나쳐도 웬만하면 인사를 생략해버
린 채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옆 방 연구실의 신참 후배와 회의 중에 어
떤 일로 부딪치게 되었다. 그때 박 교수는 후배에게 매서운 지적과
더불어 심한 언사도 서슴지 않고 내뱉어버렸다. 박 교수의 차갑고
거침없는 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다른 직원들이야 그의 그런
모습에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그 신참
후배는 무척 마음이 심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후배는 아침 회
의 때 박 교수로부터 심하게 지적받은 일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와중에
교통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배와 그날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했던 지인 한 사람의 고
백에 따르면, 그가 운전 중에 엉엉 울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고 하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마도 박 교수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그런 사고가 있고 난 후, 며칠 동안 박 교수는 집 밖으로 외출조
차 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점차 너무나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박 교수의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때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정을 아
는 그의 친한 친구는 변해버린 박 교수의 모습이 가끔은 안쓰러워
그를 달래보기도 한다.
"친구야. 화날 때는 화내."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박 교수는 연신 허허 웃기만 하면서
"이젠 화가 안 나. 정말이야"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쯤 박 교수와 친구는 가까운 산을 오른다. 어느
날 산을 오르다가 박 교수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떤 작은 바위 앞에
서서 말했다.
"그때 후배의 사고 이후에, 어느 날엔가 혼자서 우울한 마음으
로 이 산길을 계속 걸었어. 그런데 산 중턱에 마치 미륵불처럼 놓
여 있는 이 작은 바위에 자꾸 마음이 가 닿는 거야."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고 있는 작은 바위. 그 바위가 화려
한 기암괴석은 아니어도, 그저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평온
한 사람의 얼굴 같아 보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 바위를 반복해서
쳐다보자 어느샌가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그 바위의 마음을 닮고
싶어졌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 다음날부터 다시 예전처럼 자신의
일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도 연신 바위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바위 참 잘 생겼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버나드 쇼의 아내가 남편의 첫 원고
를 보고선 형편없다고 혹평을 했다. 그러자 버나드 쇼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하지만 일곱 번째 수정원고가 나올 때까지만
좀 기다려줘."
그런가 하면, 소설가 은희경 씨도 초고를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유는 초벌 원고는 상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
한 상투적인 문장을 고치는 데 뼈를 깎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이
러한 작가의 고통이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승화되는 불길이 된다.
당신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그려진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도 괜찮다. 이를 고치고 수정하고 다듬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착한 책(원재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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