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유럽

터키 에훼수스 - 성모 마리아가 살던 집에 가다

doggya 2012. 2. 11. 04:01

 

오늘 여러분을 모시고 갈 곳은 조금 특이한 곳이에요.

 

저는 원래 어떤 장소에 어떤 인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아요.

그저 지구 한 구석에 한 때 어떤 일이 잇었던 한 장소일 뿐이라는 생각이지요.

역사적인 사실이 더 관심이 있지 장소 그 자체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번 여행에서 뜻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서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와서 말년을 살았던 집이요.

거기 가기 전에는 거기가 성지인지도, 또 성지순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라는 거 조차도 몰랐거든요.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서 저를 비롯한 두 사람이 부탁을 해 차를 얻어 타고는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가다가  잠시 차를 세우는 곳에는 1996년에 미국 에훼수스 협회에서 세운 성모 마리아 상이 있더군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즌 켠 언덕을 보니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아무도 찾지 않는 원형 극장이 있네요.

그러고 보니 옛 에훼수스의 겨우 25퍼센트만 현재 발굴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더군요. 이런 구석에 까지 극장이 있었다니 말에요.

그 뒷산에도 많은 유적들이 묻혀 햇빛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 자리에서 바라 본 어제 하루종일 돌아 다녔던 셀축이에요.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저수지 같은 곳이었어요.

일설에는 여기서 사도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일설에는 그냥 물을 저장해 두었던 그러니까 우물 같은 구실을 한 곳이었다고 해요.

 

 

아마도 원래는 더 깊었겠지요.

나중에 그 곳에 계시는 수사님한테 여쭈어 보니...

물을 저장했던 곳이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하네요.

이유는 세례를 주기 위해서는 깊이가 너무 깊다는 거 한 가지.

그리고 아무리 둘러 봐도 세례를 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계단 같은 것이 없다는 거지요.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진짜 입구가 나와요.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빌라도의 박해를 피해서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훼수스 지방으로 피난을 와

셀축에서 약 9 킬로미터 떨어진 불불산 꼭대기에 집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곳이 바로 그 곳이지요. 

 

 

그리고 올라가는 길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안내문이 있고요.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 안내문은 영어로 쓰여진 거하고 조금 다르게 씌여 있다는 거에요. ㅎㅎㅎ

 

 

입구에서 젤 먼저 맞아준 인자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리고 더 들어가기로 할게요.

 

 

이 집터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19세기 중엽 독일 태생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 소속의 가타리나 엠메릭크(Anna Katharina Emmerick 1774 - 1824년) 수녀가
전신마비 증세로 마지막 12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자주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성모 마리아가 사시던 집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를 했는데,

한 가지 이상한 건 이 수녀는 에훼수스 근처에 와 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

 

그 후서 독일의 시인 브렌타노가 엠메리크 수녀의 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듣고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출간하였답니다.

이 책을 읽은 융(Yung) 신부와 그 일행이 그 책에 기술된 장소를 찾기 위해 1891년 에훼수스 주변 산을 뒤지다가

책에 기술된 내용과 맞는 집과 풍경을 찾게 되고 여러가지 고증을 거친 끝에 

이 곳이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보낸 집으로 확정이 되고,

그  이듬해 이즈미즈 대교구 티모니 대주교가 이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고 합니다.

 

 

물 저장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신 수사님.

작년에 돌아가신 저의 이모님과 같은 소속의 수사님이라서 더욱 좋더군요.

 

 

지금 현재 공개된 것은 두개의 방인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오른 쪽의 문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역사적인 고증에 의해서 이 집은 원래 1 세기에 자그마한 집으로 지어졌고 4세기에 보수를 해서 성당으로 이용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후 건물의 일부가  7세기 경에 다시 고쳐지고, 1940년에 다시 한 번 보수공사를 거치게 되었대요.

마지막 보수는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에서 1951년에 현재의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곳이 진짜로 성모 마리아가 살던 곳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들이 참 많았다고 해요.

 

이 곳에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증정된 세계 최초의 성당이 있는 곳이며

지난 번에 셀축을 돌아다닐 때 보여드렸던 거 처럼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 점

이러한 사실들을 에훼수스에 살던 그리스 정교 크리스찬들이 옛날부터 자손대대로 성모 마리아께서 이 곳에서 살았던 사실과 아울러 성모 마리아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들은 이 곳을 파나기아 카풀루 라고 부르고 매년 8월 15일이면 많은 신자들이 이 곳을 순례했다고 하네요. 

 

 

그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진은 어렵게 찾아서 빌려 온 거에요.

들어가 기도만 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양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도 있엇어요.

은은한 향기가 온 주위를 감싸는 그 앞에 서면 성스러워질 수 밖에 없더군요.

 

 

들어갈 때 초를 몇 개 가지고 들어가서 성모 마리아 상앞에 봉헌을 하고 옆문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또 조그만 촛불 기도소가 있어요.

 

 

오른 쪽에 있는 두 남자와 함께 들어갔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캐나다에서 온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캐톨릭 신자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에 대한 믿음도 없지만, 너무나 감격적이엇다고 하대요.

나와서 그 감격으로 한참을 흐느껴 울더군요. 가만히 어깨를 감싸 주었어요.

물론 저도 무언가 벅찬 감정이 솟아 오르는 걸 누룰 수가 없었지요.

 

 

사람이 뜸해진 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는 내가 저 안에서 무얼 했던가 생각하게 되대요.

솔직히 말하면 들어갈 때 초를 몇개 들고 들어가 봉헌을 하고 마리아상 앞에서 무언가 마음에서 울어나는 기도를 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거에요.

그리고 거기서 무얼 봤는지도 뚜렷하게 생각이 나질 않더라구요. 불과 몇 분 전의 일이었는데...

상당히 감격적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어요.

 


내려 오는 길에는 산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것을 성수로 생각을 하더군요.

물맛이 아주 달고 신선한게 갈증을 모두 해소시켜 주더군요.

육체의 갈증 뿐이 아니고 영혼의 갈증도 해소시켜 주기를 바랬지요.


 

그 바로 옆에 있는 벽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문이 매달려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렇게 많은가 보네요.

거의 가 다 무엇인가를 이루어달라는 기도겠지요?

 


이 곳이 발견되고 개발된 한 참 후인 1961년 드디어 교황 요한 23세가

이 건물에서 정기적으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또한 캐톨릭의 성지로 공포했답니다. 

 
또한 1967년에는 바오로 6세 교황이 참배하였고, 1979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순례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 곳은 크리스챤 뿐이 아니라 같은 유일신을 믿는 모슬렘 교도들에게도 순례의 장소로 여겨져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는군요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여러분께도 좋은 경험이 되었기를 바래요. ^+^